김종천 대전시의회 의장

미국 사회에 시위가 끊이지 않고 있다.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가 백인 경찰에 의해 숨지는 사건이 발생하자, 이에 격분한 국민이 들고 일어선 것이다.

이번 사건은 피해자가 비무장 상태에서 일어났던 것도 그렇지만, 흑인에 대한 인종 차별이 더욱 큰 문제가 됐다.

또한 가장 공평하고 정의로워야 할 공권력에서 보여준 심각한 차별이 국민의 분노를 키웠고. 과거에 똑같이 희생된 흑인이 많다는 사실도 시위 열기를 높였다.

시위는 평화로운 항의에 그치지 않고 폭력과 약탈, 방화 등으로 변질되기도 했다.

무고한 한인 업체의 피해도 커지면서 교민들은 1992년 벌어졌던 LA폭동이 재연되는 것은 아닌지 큰 불안을 겪어야만 했다.

이런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은 군대까지 동원하며 연일 시위대를 자극하는 말을 쏟아내 미국사회의 불안과 혼란을 가중시켰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희생자의 가족이 무력시위 자제를 요청하며, 분위기가 점차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시위대를 진압해야 할 경찰들도 이른바 ‘무릎 꿇기’를 통해 지지의 뜻을 밝히기도 했다.

이와 같은 노력으로 인해 시위대 스스로도 무력을 자제하고 좀 더 평화로운 시위를 유도하고 있다.

시위의 근본적인 원인이 미국 사회 내에 뿌리 깊은 인종 차별과 불공평에 대한 항의를 담고 있다는 것을 재인식하며, 폭력을 자제하고 질서 있게 행동하자는 목소리가 내부에서도 높아진 것이다.

과거, 기회의 땅이라 불린 미국은 수많은 나라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자신이 태어난 곳을 떠나 이주를 감행할 정도로 매력적인 나라였다.

우리나라에서도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태평양 바다를 건너간 이들이 많았다.

그러나 출신 배경이나 인종, 학력 등으로 인한 차별은 미국 사회에서 중요한 사회문제로 대두됐다.

그중에서도 흑인을 비롯한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은 지금도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민주주의가 발달하고 인권을 중요시하는 미국에서조차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은 그 뿌리를 뽑지 못한 것이다.

차별과 불공평의 사회적 현상은 우리나라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최근 많은 문제가 되고 있는 ‘갑을문화’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갑을의 원래 의미는 지금과는 사뭇 달랐다.

과거에는 갑을병정처럼 수평적이고 순서를 지칭하는 의미였지만, 지금은 상하(上下)관계나 주종(主從)관계와 같은 수직적 의미로 인식돼 버린 것이다.

그러면서 ‘갑’은 강자를 ‘을’은 약자란 의미로 둔갑해 버렸다.

이번에 미국에서 발생한 흑인 사망 사건을 여기에 비춰 보면, 미국 경찰은 갑이었고 흑인은 을이었던 셈이다.

얼마 전 서울에서 발생한 경비원 사망 사건도 결국은 고질적인 갑을문화에 따른 것이라 볼 수 있다.

갑의 위치라고 생각했던 입주민은 아파트 경비원을 을로서 대했다.

당장 먹고 사는 문제가 걸려있는 일자리 앞에서는 경비원 스스로도 약자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2014년에 발생했던 경비원 분신 사건도 그렇고 잊을만하면 나타나는 입주민의 경비원 갑질 사건에, 엄벌을 요구하는 국민 청원이 등장했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두 사건을 보면서, 진정으로 공정하고 평등한 사회는 이루어질 수 없는가 하는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인간은 그 존재만으로 마땅히 존중받고 인권을 보호받아야 한다.

나이, 성별, 직업, 인종 등 그 어느 사유로도 차별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그러기 위해선 정책과 제도적 기반이 마련돼야 하고, 무엇보다 개인의 의식이 변화해야 한다.

때로 문화는 법보다 강한 힘을 발휘한다. 그 문화는 우리의 의식이 만든다.

상대가 누구든지 어떤 사람이든지간에 존중하고 배려하는 생활습관을 가진다면, 그리고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아 지금의 ‘갑을문화’를 대체한다면 평등한 사회는 만들어질 것이라 믿는다.

또다시 그 누구도 억울하고 부당한 일로 소중한 목숨을 잃지 않도록 평등과 인권이 우선인 문화를 만들자. 나부터... 우리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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