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7년 촬영한 대청댐. 대전시 제공
▲ 2005년 4월 17일에 진행된 제 2회 대청댐 수몰민위안 애향잔치 모습. 대전시 제공

80 대청댐의 아픈 이야기
이순자 여사, 잉어 20만마리 등 치어 방생 공들여 기념비도 세워
대청댐, 많은 희생·열정 덕 탄생 식수·공업용수 공급하는 ‘젖줄’
수몰민 4075세대 2만6000명 망향비 세워 잃어버린 고향 그려

1980년 12월 강압적으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은 대통령에 앉자마자 대청댐 준공식에 참석했다. 대전시 대덕구 미호동에 있는 행사장에서 대청호 주변의 아름다운 경치를 둘러보던 전두환은 대청댐 유래 비를 보다가 이맛살을 찌푸렸다. 거기에는 댐을 만들기까지의 역사, 특히 박정희 대통령 이야기만 있을 뿐 자신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없었던 것이다.

사실 대청댐 건설에 전두환의 역할은 없었다. 그런데도 대통령 수행원은 이것을 문제 삼아 트집을 부리는 바람에 행사장 분위기가 매우 경색되고 말았다.

그러나 전두환은 옆에 있던 장세동 경호 실장에게 호수 건너편을 가리키며 여기에 대통령 별장을 하나 지으면 좋겠다고 지시하면서 분위기는 밝아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하여 탄생된 것이 지금의 청남대로 노무현 대통령까지 다섯 대통령들이 별장으로 이용했다.

그런데 그 해 12월 충북의 한 관변단체가 전 대통령 부인 이순자 여사를 초청, 대청호에 치어를 방생하는 행사를 가졌다. 치어는 수 만 마리가 되었는데 당초 붕어와 잉어의 치어를 계획했으나 추운 겨울이어서 많은 치어를 구할 수가 없어 외래 어종인 블루길 치어를 많이 섞었다.

블루길은 우리 토종 어류를 잡아먹는 외래 어종으로 생태계를 교란시키는 골칫거리. 하지만 그 시절에는 국민들의 단백질 공급을 위해 정부에서 수입했던 터라 생태계 파괴 같은 환경문제는 생각하지 않고 블루길을 방생했는지 모른다.

곧 문제가 발생했다. 블루길 맛이 주민들에게 인기를 얻지 못했고 오히려 재래종 붕어, 잉어 등을 포식하는 바람에 행정당국에서는 이것을 없애기 위해 1kg당 3,200원씩 수매하기까지 했으며 주민들은 블루길을 이순자 여사의 이름을 따서 '순자 붕어' 또는 '순자 고기'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순자 여사의 대청호에 대한 관심은 특별했다. 1981년 5월 28일 그는 또 치어 방생 행사를 대청댐 유래비기 있는 대전시 대덕구 미호동에서 가졌다.

이번에는 잉어 20만 마리……. 행사장에는 관내 주요 기관장들이 모두 참석했으며 TV 등, 취재 기자들도 몰려 왔다. 그 자리에 이순자 여사의 치어 방생을 기념하여 기념비까지 세웠다. 하지만 그 기념비는 지금 그 자리에 없다. 언제 없어졌는지 모르지만 누군가 송두리째 뽑아 버린 것이다. 어쨌든 이순자 여사가 대청호 치어 방생에 열심이었던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궁금증을 자아낸다.

원래 방생은 불교에서 덕과 자비를 쌓는 의식으로 시작되었으나 근래에는 기복적 행위로 행해지기도 한다. 어쩌면 그 기념비를 뽑아 없애 버린 사람은 이순자 여사의 방생이 순수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이곳에 있는 기념비 가운데 우리의 마음을 숙연하게 하는 것도 있다. 대청호 공사를 하다가 안타깝게도 목숨을 잃은 8명을 기리는 추모비가 그 것이다.

정말 대청댐은 1977년부터 5년간에 걸쳐 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열성으로 이루어진 위대한 작품이다. 이런 희생이 있어 대청댐은 대전시가 광역시로 발전할 수 있게 했으며 청주와 천안, 세종, 공주 등 충남·북, 그리고 전라북도 일부에까지 식수와 공업용수를 공급하는 젖줄 역할을 하게 한 것이다.

특히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은 500리 대청호에 조상 대대로 살아온 고향을 잃은 수몰민들이다. 이들 수몰민들은 옥천, 문의, 옛 대덕구 동면 등 4075세대 2만6000 명이나 된다. 이들은 대청호 주변 살던 마을 가까이 망향비를 세우고 잃어버린 고향을 그리며 명절 때는 '망향제(望鄕祭)'도 갖는데 그렇게 그들 가슴에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아직도 불꽃처럼 살아 있다.

<충남복지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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