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봉오동 청산리 전투 100주년 특집 다큐 장면. 사진=국방홍보원

#. 1868년 평양 출생, 조실부모, 떠돌이, 머슴살이, 군졸 지원, 탈출, 조지청 일꾼, 악덕주인 구타, 승려생활, 열애, 아내 빼앗김, 사냥꾼, 동학농민전쟁으로 반봉건 사상, 일본군 무기탈취, 의병모집 병법지도, 첫 패배, 금광으로 피신, 탐관오리 처단 의협 생활, 떠돌이, 아내 상봉, 7년간 안정, 포수 우두머리, 의병 조직, 게릴라 전투, 아내 고문사 장남 전사 차남 병사, 탄약 교섭차 블라디보스토크 행, 지명 수배, 다시 고국으로, 의병 연계 게릴라전, 대한독립군 창설, 일본 군경 습격, 봉오동 전투 승리, 청산리 전투 승리, 블라디보스토크 체류, 카자흐스탄 강제 이주, 소비에트 정부 연금생활, 재혼, 집단농장 관리, 극장 경비, 1943년 별세. 1962년 대한민국 정부 건국훈장 대통령장.

#. 이이화 선생이 쓴 '인물한국사' 홍범도 장군 편을 간추려 보았다. 이보다 더 극적이고 파란만장한 삶이 있을까. 한 인간으로 겪을 수 있는 모든 고난과 불운, 박해와 핍박이 홍범도 장군의 삶과 투쟁에 선연하게 배어있다. 픽션으로 이야기를 만든다 해도 이이상 신산한 역경과 숨가쁜 고비고비의 행적을 그려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가혹한 개인적 비극과 민족의 불행이 겹치는 가운데 투철한 신념과 애국 일념의 기개로 독립운동사에 빛나는 한 장을 대문자로 기록한 홍범도 장군. 봉오동 대첩의 혁혁한 승리가 널리 알려진 것도 그리 오래되지 않았고 김좌진 장군의 무훈으로만 각인된 청산리 전투를 승리로 이끈 주역 중 한 분이라는 사실 또한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특히 중고등학교 시절 교과서로 배운 지식이 거의 평생의 역사인식으로 굳어지는 우리 환경에서 뒤늦게나마 홍범도 장군을 기억하게 된 것은 더없이 다행한 일이다.

더구나 1937년 69세 나이에 스탈린의 강제이주로 블라디보스토크를 떠나 막막한 카자흐스탄으로 옮겨 그곳에서 만년의 삶을 보낸 장군이 2차대전이 발발하자 일흔이 넘은 나이로 정규군에 지원했으나 거절당했다는 일화는 감동적이다.

모레 6월 7일이면 봉오동 전투 100주년이 된다. 우리가 기억하거나 기억하지 못하는 숱한 항일투쟁, 민족자존 저항의 역사를 통하여 봉오동 대첩의 의미를 더욱 새롭게 되새기는 것은 험난했던 장군을 비롯한 참여 애국지사들의 삶과 헌신의 실체가 오랜 세월 제대로 현양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즈음 안팎의 여러 상황에서 이 기념비적인 대일항쟁의 의미와 가치를 새롭게 인식할 의무를 우리 모두가 걸머졌기 때문이다. <한남대 프랑스어문학전공 명예교수, 문학평론가>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