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수 공주대학교 교수

고등학교 때 재미있게 배웠던 고전소설이 ‘춘향전’이다. 당시는 국어 선생님의 구수한 입담 덕분에 짜릿한 통쾌함을 느꼈지만 나이가 들면서 그것의 의미가 무겁고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춘향전’과 그 주인공 이몽룡은 오늘날 한국 사회의 저질 정치와 사악한 정치 리더의 패덕(悖德)을 잘 대변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춘향전’은 시스템이 아닌 위선적 도덕주의를 부르짖는 양반사회의 이중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속으로는 비리, 부정부패, 성폭력, 끼리끼리의 횡포를 저지르면서도 주둥이로는 도덕주의를 읊조렸던 조선 사회를 투영시켜준다. ‘금 술잔에 좋은 술은 천 백성의 피요, 옥쟁반에 담긴 기름진 안주는 만백성의 땀이라. 촛농 떨어질 때, 백성의 눈물이 떨어지고 노랫소리 높은 곳에 원망 소리 높구나!’라는 이몽룡의 한시(漢詩)는 쇼통과 위선의 극치다. 이는 문재인이 취임사에서 말한 균등, 공정, 정의론과 똑같다.

그것은 소설 속 이몽룡의 행동거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는 남녀칠세부동석(男女七歲不同席)의 도덕 사회(?)에서 결혼도 하지 않은 채 춘향이와 동침했다. 그런데도 춘향모(母) 월매는 그것을 좋아하고 자랑했다. 이몽룡이 권세가의 자식이자 전도유망한 젊은이였기 때문일 것이다. 또 이몽룡은 수많은 직업 가운데 부친의 뒤를 잇는 고급관료의 길을 선택한다. 일단 문과에 급제하면 평생 타인을 노비처럼 부리며 호가호위(狐假虎威)할 수 있다는 것을 동물적 감각으로 일찌감치 터득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과거시험에 급제한 그가 암행어사 임무를 띠고 맨 처음 찾은 곳이 바로 전라도 남원이다. 그곳은 춘향이와 하룻밤의 연정(戀情)이 깃든 제2의 고향이다. 거기서 그는 “암행어사 출두야!”를 외친다. 무슨 놈의 정의실현을 위해 마패를 휘둘렀는지 궁금했다. 그런데 고작 감옥에 갇혀있던 자기 애인을 구한 것이 전부였다. 이는 권력의 사적(私的) 농단에 대한 전형이다. 결국 이몽룡은 춘향에게 수청을 강요하며 박대했던 변학도를 탐관오리란 죄목으로 숙청해 버린다. 이 또한 어디서 많이 본듯한 내로남불의 사악한 적폐몰이 수법이다. 하지만 ‘춘향전’은 거기서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이 대목에서 나의 고민은 계속된다. 이따금씩 나는 어줍잖은 생각을 해본다. 만약 ‘춘향전’의 내용이 좀 더 길었다면 과연 이몽룡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모르긴 해도 그는 한동안 자기 세상을 만난듯이 권력을 남용하고 희롱하다가 신임 암행어사로부터 새로운 적폐 대상으로 몰려 숙청당했을 것이다. 그것이 권력의 비열한 속성이다.

30년 가까이 치열하게 역사 공부를 해오면서 터득한 지혜가 있다. ‘권력은 돈이며 부메랑’이라는 교훈이다. 즉 권력은 자신의 돈처럼 아끼고 소중하게 써야 뒤탈이 없다. 반시장, 반기업 정책으로 일자리를 죽여놓고 이제와서 수십조의 혈세로 일자리를 다시 만들겠다고 떠드는 자들은 향후 그 빚을 갚아야 할 미래세대로부터 부관참시를 당할 것이다. 또 긴급재난지원금 살포로 허접한 권력을 부여잡고 과거사 뒤집기, 공수처 설치, 조국과 윤미향 구하기, 국립묘지의 애국 우파인사 파내기, 우파 유튜버 탄압은 역사의 부메랑이 되어 너희들의 책임을 엄히 물을 것이다. 원컨대 제2의 이몽룡은 되지 마라! 정의롭지 못한 시도는 모두 일장춘몽이 될 것이다. 그러니 자중하고 절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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