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영 청주시 도로시설과 주무관

결혼하기 전 나는 영유아·어린이의 입장을 금지하는 업소, 일명 '노키즈존(No Kids Zone)'에 크게 반감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찬성하는 편이었다. 음식점에서 크게 떠들고 뛰어다니며 정신없게 구는 아이를 제재하지 않는 보호자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결혼하고 아이를 가진 후에도 노키즈존이 딱히 불편하지 않았다. 다만 임신 중에 맛있게 먹은 일본 가정식 식당이 노키즈존이라 남편에게 "아기 태어나면 더 못 오겠네"하며 쓴웃음을 지은 적이 있다.

그러다 노키즈존에 대해 다시 생각한 계기가 있다. '노키즈존은 유색인종 출입 금지, 유대인 출입 금지와 다를 바 없는 차별이자 인권 유린'이라는 SNS의 글을 본 후다. 머리를 망치로 맞은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손님을 가려 받는 것이 주인의 권리이자 자유라고 가정해보자. 몇 개월 전 일본과 한국의 사이가 매우 좋지 않았을 때, 일본의 몇몇 가게에서 한국인을 조롱하며 출입을 금지했다.

앞선 가정이 옳다면 이처럼 인종·국적·성별·나이 등에 따라 거부하는 게 허용된다. 그렇다면 누군가가 우리를 차별했을 때 문제를 제기할 수 없고 온 세계가 역사를 거쳐 싸워 지키고 있는 평등이란 가치가 훼손된다.

몇몇 사람들은 "굳이 '노키즈존'을 써 붙인 곳에 문제를 제기하지 말고 키즈카페나 아이가 갈 수 있는 식당에 가라"라고 볼멘소리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흑인이 갈 수 있는 식당·버스, 나아가 직장의 자리까지 분리하고 제한했던 미국의 인종차별 흑역사와 별반 다를 바 없다.

키즈카페는 아이가 없는 어른들도 들어갈 수 있지만 반대로 노키즈존은 아이가 있는 어른들은 들어갈 수 없다.

그 차이가 무척이나 크다는 건 누구나 알 수 있다. 노키즈존이 점차적으로 확산되면 아이를 데리고 갈 수 있는 곳이 무척이나 한정된다. 이는 부당한 일인데도 부모들은 갈 수 있는 곳이 그나마 있다는 데 감사하며 머리를 조아릴 테다.

이렇게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르듯 차별에 적응하는 건 무척 위험하다. 이런 삶에 대한 태도가 계속되면 사람들은 더 차별에 항변하지 않고 포기하게 돼 다시금 차별의 역사가 반복될 수 있다.

또한 아이를 데려오는 부모를 모두 일명 '진상'이라고 단정 짓고 거부하는 건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다.

문제가 되는 언행을 하는 당사자에 대해 때마다 항의나 제한을 하는 것이 맞는 게 아닐까. 억지스러운 요구와 막말은 하는 건 여타의 어른들이 더 빈번할 텐데 유독 아이들에게만 왜 그렇게 매서운 눈초리인지 모르겠다.

또 차별은 혐오를 수반하기 때문에 아이가 있는 가족에 대한 모든 차별은 단순한 거부나 제한을 넘어 우리나라의 통념상 주 양육자인 아이 엄마에 대한 혐오 정서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이는 저출산 시대에 분명한 악재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속한 사회는 매우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어우러져 살고 있다.

어리석고 잘못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고 누구나 될 수 있으니 서로 알리고 깨우쳐줘야 하는 걸 명심하자.

나 역시 한때는 별생각 없이 받아들였지만 지금은 태도가 달라진 만큼 많은 사람이 '노키즈존'은 명백한 차별이니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을 바꿨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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