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종태 대전 서구청장

폭염이 기승을 부리던 지난해 8월 대전 서구 둔산동의 한 아파트 경비실에 태양광 패널과 발전기가 설치됐다.

주민들이 투표를 거쳐 경비실 에어컨 설치를 결정하자 시민단체가 전기료 부담을 덜어 주자며 모금을 통해 지원한 것이다.

대전발 ‘착한 에어컨’ 소식은 전국으로 퍼졌고, 무더위에 지친 시민들에게 모처럼 시원한 바람을 선사했다. 관리비 상승과 공기 오염 등을 이유로 논란이 끊이지 않는 ‘찜통 경비실’ 문제의 해법을 제시했다는 평가도 받는다.

이처럼 한여름 소나기 같은 반가운 이야기도 있지만, 한여름 무더위만큼 답답한 소식도 적지 않다.

최근에도 갑질, 폭행, 극단선택과 같은 우울한 제목의 기사가 언론에 자주 오르내렸다.

서울 강북구의 아파트에서는 이중주차 문제로 입주민과 갈등을 빚던 경비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극단적 선택을 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가해자를 엄벌에 처해야 한다는 청원이 올라와 순식간에 수십만 명을 돌파했다.

경기 용인시의 한 아파트에서는 마스크 착용을 놓고 시비가 붙어 택배기사 형제가 입주민으로부터 폭행당하는 사건도 있었다. 아파트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주거 형태이자 생활공동체의 상징이다. 통계청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 2018년 아파트에서 거주하는 가구 수가 1000만 가구를 돌파하면서 아파트 거주 가구 비율(50.1%)이 절반을 넘어섰다.

우리 구의 경우 전체 주택에서 아파트 비율이 58%에 육박한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여 살다 보니 다양한 갈등이 표출되고, 그것을 나의 일이자 가까운 이웃의 일로 받아들인다.

결국, 아파트에서 심심치 않게 벌어지는 갑질, 층간 소음 등으로 인한 갈등은 현재 우리 사회 공동체의 모습을 보는 창(窓)이자 가늠자인 셈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대응책 마련이 우리 사회는 물론 전 세계의 화두다.

코로나19(이하 코로나) 이후 변화를 예견하고 어떻게 준비할 것인지를 두고 다양한 논의가 전개되고 있다. 해법은 다양하지만, 대체로 일치하는 교집합이 있다. 바로 공동체의 복원이다. 비대면, 비접촉, 무인화, 온라인화로 상징되는 언택트(un+contact) 시대일수록 지역공동체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공공성, 사회적 가치, 지속가능성 등을 키워드로 하는 마을공동체와 사회적 경제 활성화가 시급하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역할 분담이 철저하게 이루어지고, 지방정부의 책임과 권한이 더 강화되어야 한다.

최근 서구는 주말을 이용해 아파트에서 이색 음악회를 열었다. 코로나로 지친 주민을 위로하기 위해 마련한 대전 최초의 ‘발코니 음악회’였다.

문화 행사에 목말랐던 주민은 발코니에서 광장을 내려다보며 연주를 감상했다. 어떤 주민은 오랫동안 야외활동을 하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듯 캠핑용 테이블과 의자를 들고나와 온 가족이 음악회를 즐겼다. 곳곳에서 저마다의 방식으로 감상하던 주민들은 연주가 끝날 때마다 환호와 박수로 화답했다.

여전히 가까이 앉지 못한 채 거리를 두고 공연을 감상했지만, 가까운 그곳에 늘 이웃이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하는 기회였다. 비대면·비접촉의 시대, 소외와 격차가 심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우리는 지난 몇 개월 동안 선진화된 제도, 정부에 대한 신뢰, 견고한 시민의식 등 우리의 잠재력을 확인했다.

공동체의 관점에서 풀어낸다면 비대면·비접촉의 틈을 더 촘촘한 연결망으로 좁힐 수 있다. 생활공동체를 더 풍요롭게 만들 수도 있다.적어도 갑질, 폭행, 극단선택과 같은 단어를 연대, 협력, 사회적 가치로 대체할 수 있지 않을까?

포스트 코로나 시대, 소외와 격차 없는 공동체를 위해 다시 신발 끈을 조여 맨다. 이번에는 음악이었지만, 더 따뜻하고 풍성한 콘텐츠로 지역민을 찾아갈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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