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진철 세종교육정책연구소장.

이진철 세종교육정책연구소장

우리 교과서에는 ‘한국은 수출위주 경제만이 살 길’이라는 식으로 경제정책 방향을 언급해 왔다. 공산품을 생산해서 해외에 판매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수익을 국가 경제의 주력으로 삼아왔다. 1970년대 이래 이러한 경제 정책으로 한국 경제는 비약적인 성장을 이룩하였다. 하지만 성장의 이면에는 ‘노동인권 침해’, ‘관치 경제에 의한 폐해’, ‘농촌지역 낙후’ 등 그림자도 드리워져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우리의 교과서는 1980년대 ‘광주 민주화 운동’을 한 동안 ‘광주 반란 사건’으로 규정해 왔다. 민주화를 열망하는 광주 시민의 정의로운 항거를 반란 사건으로 규정하여 무력을 동원하여 진압하고, 그 무력으로 마침내 정권을 쥔 집단이 오랫동안 정의로운 정치집단으로 행세하기도 하였다.

한국의 기성세대들은 교과서 지식을 ‘객관성과 보편성을 담보한 절대적 지식’으로 여겨왔다. 동시에 교과서의 지식을 많이 아는 것이 사회적 성공을 보장한다고 생각했으며, 실제 교과서 지식은 그러한 기능을 했다.

문제는 교과서를 대해 온 기존의 패러다임이 이제는 바뀌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한 연구기관의 보고에 따르면 인류 지식의 총량은 1900년대까지는 100년마다 2배로 증가했으며, 1900년대 이후에는 25년마다 2배로, 21세기 초인 현재는 13개월마다 2배로 증가했다고 한다. 2030년 이후가 되면 3일에 2배로 폭증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이 많은 지식을 교과서에 담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른바 ‘교과서 정책’을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가 대두될 수밖에 없다. 교과서 정책은 국가 교육과정 정책의 일부라고 볼 때, 교육부가 현재 추진하고 있는 ‘2022 개정 교육과정’을 어떻게 만드느냐의 문제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물론 이번 개정은 교육과정의 큰 골격을 다루기보다 부분 개정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지만 이러한 교육과정 개정의 과정에서 국민들의 목소리를 사회적 합의의 과정을 거쳐 반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교과서 정책과 관련하여 몇 가지 전제가 되는 점은 아래와 같다.

첫째, 사회통합을 추구하는 차원의 교과서는 필요하다. 교과서는 ‘역사적 사회적 산물’이다. 누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교과서의 내용을 구성하는가의 문제이다. 인류사적 가치 차원에서 계승할 것이 무엇인지, 경계하고 청산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에 관한 사회적 합의를 거친 교과서 편찬이 필요하다.

둘째, 과학기술, 문화예술 등 다변하는 분야는 개방적 교재를 허용한다. 다변하는 분야의 지식을 제한적인 ‘그릇’에 담아두는 방식은 적절하지 않다. 학생들에게 창의적인 사고와 경험이 가능하도록 다양한 지식과 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

셋째, 어떠한 개인적 특성도 존중받을 수 있는 교과 운영이 요구된다. 인간은 유전적으로 또는 사회적으로 각자의 특성이 무한할 정도로 다양하다. 인지(認知), 정의(情意), 사회(社會), 신체(身體) 능력 면에서 개인차가 다양하다는 점을 감안해 현재와 같은 인지 능력 위주의 학업 평가에서 벗어나 각자의 특성이 발휘될 수 있도록 하는 교과 운영이 필요하다.

위와 같은 차원에서 특히 ‘고교학점제’ 도입을 위한 고교 교육과정의 개정이 중요 의제로 대두되고 있다. 2015년 이후 세종시교육청을 비롯한 많은 시·도교육청은 종래의 인지 위주 교육에서 벗어나 학생들의 전인적인 성장발달을 위해 ‘역량 교육’을 도입하는 등 교육과정과 교과서 운영의 변화를 도모해 왔다. 올해 교육부가 추진하는 2022 교육과정 개정에서는 시·도교육청의 이같은 노력을 어떤 수준에서든 수렴하여 반영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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