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기래 대전서부교육지원청 행정지원국장

입하가 지나면서 식물들은 진록 빛깔로 옷을 갈아입느라 바쁘기만 하다. 다가올 여름의 격정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한여름 동안의 노동량이 일 년간의 명운을 좌우하기에 더 깊은 애착과 욕망이 솟구친다.

식물들은 치밀한 셈법과 내밀한 거래로 공존한다. 짜여진 자연의 시계로 봄을 깨우고, 볕으로 얼음을 녹여 땅속뿌리에 동력을 주어 나무마다 줄기 속으로 물 흐름을 재촉한다. 부지런한 살림꾼인 뿌리는 이른 봄부터 해야 할 일이 많다.

식물은 빛에 대한 탁월한 감지능력이 있다. 태양으로부터 전해지는 빛은 숲 속 공동체 모든 질서를 유지하며, 공존과 생체주기의 메커니즘을 절대적으로 지배한다. 식물 간 공간배치와 계절, 밤낮의 탐지, 경쟁자에 관한 식별과 성장과 휴면을 알아서 척척 대비한다. 나무의 외관과 크기는 햇빛을 받기 가장 효율적인 구조로 가지와 이파리마다 각도와 자세가 다른 것도 같은 이유다.

자연환경에서는 변화에 대한 완충 능력이 독특해 각자의 본능은 빛과 온도의 적응 기작부터 다르다. 잎은 성장을 위한 공장이지만 겨울이 오기 전에 과감히 떨구어 겨울을 나기 위한 비용 절감을 한다.

식물에게 자손 번성에 대한 집착은 남달라 생식기관인 꽃의 구조나 모양 형태, 위치 모두 유리한 선택이 우선이다. 매개 곤충을 부르기 위한 매혹적인 향과 자태가 완벽한 디자인이다. 그들과의 공생관계는 예나 마찬가지로 꿀을 준비하고 향기로 유인한다. 식물 생태계에서 수꽃이 더 강해지려는 것과 암꽃은 더 예뻐지려는 것은 관능이다. 요즈음 송화(松花) 같은 집단 개화는 꽃가루받이 확률을 높이고 꿀을 절약하려는 자연 경제적 술수다.

지구 상의 많은 색상 중에 초록은 식물이 선택한 절묘한 ‘신의 한 수’다. 모든 색채 중 빛의 투과율을 높여 아래의 잎까지 빛이 전달되는 색깔로 식물의 상하좌우 고른 대칭을 이루며 자라게 한다.

각각의 수목은 미세먼지나 대기 오염물을 흡수하고, 대기 중 이산화탄소로 잎과 줄기를 만들어 살을 찌우고 몸집을 키우는 탄소 저장고이자 대기 농도를 조절하는 공기 정화기다. 자연에서 진화와 도태 현상은 설계된 일상이며, 질서와 절제로 평온이 존재한다. 혹독한 겨울은 시련이 아니라 다가올 봄을 건강하게 맞기 위해서다.

자연 생태계에서는 균형과 조화는 기본수칙이다. 아무리 예쁜 꽃이라도 꽃잎을 버려야 열매를 얻을 수 있으며, 좁은 곳에서도 잘 살아가는 분배 황금률이 존재한다. 죽은 듯 고요하지만 한정된 공간의 물과 양분만으로 햇빛을 골고루 나누는 법칙이 있다. 이들이 주는 공감으로 생명체들에게 온전한 삶의 방식과 길을 안내하고 때로는 진한 향수와 향기를 전한다.

자연은 인간에게 삶의 지평을 주고 은유로 포옹한다. 식물들은 동물의 오감보다 뛰어난 자연 순응력으로 생을 이어가는 영락없는 녹색 동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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