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조선의 건물 근정전(勤政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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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조선의 건물 근정전(勤政殿)
  • 충청투데이 기자
  • 승인 2020년 05월 21일 19시 00분
  • 지면게재일 2020년 05월 22일 금요일
  •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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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희 강동대학교 사회복지행정과 교수

경복궁은 여백을 중요시 생각하는 동양화적인 산수화의 깊고 미묘한 아름다움을 추구하여 지었다고 한다. 장대하거나 장식적이지 않으며, 권위를 위한 시설이 자연과 조화를 이뤄 깔끔한 아름다움이 심플함을 추구하는 현대 한국인의 미적 감각과도 닿아 있어 보인다. 경복궁 자리에서 풍수를 생각하며, 근정전의 행각으로 갔다. 근정문의 동쪽 남행각과 동행각이 만나는 곳에서 역간 허리를 굽혀 근정전 뒤에서 바라보니 북악산이 위풍을 자랑하고 있다.

근정전 건물 아래에 돌을 다듬어 쌓은 월대가 아래 위 2층으로 있다. 가장자리로 돌난간을 두르고 계단을 따라 난간을 설치, 마치 문이 열린 듯이 만들었다. 난간의 돌난대는 돌기둥에 의지해 설치했다. 계단의 돌기둥은 문처럼 보인다고 해서 문로주라 부르고 있다. 네 귀퉁이와 문로주 기둥머리에 돌짐승을 새겨 놓았다. 월대 정면 아래층 첫 번째 문로주 위에 서 있는 석수가 곧 해치(해태)이다. 단종 때부터 관복에 흉배(胸褙)를 달았는데 정의를 구현하는 상징으로 임금의 잘못과 대소신료들을 탄핵하는 대사간의 권위적인 동물인 해치(해태)를 표현했다. 대군의 흉배는 기린으로 기린은 인재를 표상하는 의미를 지닌다고 하는데, 두 번째 문로주에 이 기린이 표현되어 있다. 상월대의 앞 문로주에 주작이 새겨져 있고, 그 다음 기둥엔 말을 새겼다. 12지신상 중에서 남쪽에 해당하는 오상을 말한다. 월대의 36개의 돌기둥에는 암수 한 쌍씩 조각돼 있다. 또한 귀퉁이 아래 45도 각도로 돌출하는 동틀돌 상이 있는데, 남쪽 돌출 앞부분에 해태가 조각돼 있다. 어미 해태와 아비 해태가 나란히 엎드려있는데, 둘 다 머리를 돌려 근정전을 바라보고 있다. 이는 임금님의 가르침을 받기 위한 모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어미 해태 가슴엔 새끼 해태 한 마리가 안겨 왕의 가르침을 받는 어진 가족을 표현한 것 같았다. 병풍에는 낙락장송이 우뚝하게 선 신선이 사는 고장에 바위가 양쪽에 기슭을 이루고 있고, 푸른 잎이 싱싱하게 퍼진 형상의 소나무가 서 있다. 봉우리는 오악의 상징이고 오악은 산을 상징한다고 한다. 그때 사람들은 산을 넓은 해와 달이 떠 있는 우주라 생각하고, 우주를 환웅이나 단군이 다스리던 백성들의 고장으로 보았다고 한다. 이상적인 세계를 구현하는 장소라 여긴 것이다. 이는 단군의 홍익인간 실현의 장이 바로 근정전인 것이다. 일월오악병풍은 오직 우리나라에만 있다고 한다. 임금이 조복 받을 때나 정사를 내보낼 때 향로에 향불을 피우고 하늘의 뜻을 받들었다고 한다. 거기엔 어떠한 교만도 용납되기 어렵고 술수나 기만도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조선왕조가 500여년을 이어왔던 것도 임금과 대소신료들이 이러한 감각이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