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중의원에서 놀라운 사실이 또 있었다.

의원 개개인의 의석이 우리처럼 화려한 것이 아니라 대학강의실 의자와 별차이 없는 검소한 것. 영국 의사당과 비슷한 것이었다.

그런데도 의석에는 거의 빈자리를 볼 수 없을 만큼 꽉 차 있었다. 우리는 의석은 고급 회전의자이지만 얼마나 많은 빈자리가 눈에 거슬렀던가.

국정에 전념하는 일본 국회의원들에게 배워야 할 점이었다.

참의원과 중의원을 연결하는 중앙홀에는 세 사람의 동상이 서 있었다. 일본 의회 민주주의 발전에 공헌이 있는 정치인인데 놀랍게도 그 가운데 하나가 이또 히로부미(伊藤博文)이라는 것이다.

대한제국의 고종황제를 협박하여 을사보호조약을 체결하는 등 우리나라를 일본의 식민지로 만든 장본인이다.

그는 초대 조선통감이 되어 이땅에 경부선 철도가설을 비롯 러·일 전쟁을 수행하는 기틀을 다졌고 1909년 마침내 우리의 안중근(安重根)의사에 의해 하얼빈에서 사살되었다.

말하자면 그는 우리나라의 원수이지만 일본측에서는 대단한 공로자로 지금껏 의사당에 동상이 세워질 정도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다.

시대가 바뀌어도 여전히 이또 히로부미가 그들 정치의 무대에 살아 있다는 사실-참으로 야릇한 기분이었다.

살아 있는 것은 이또 히로부미만 아니라 임진왜란을 일으켜 조선땅을 7년에 걸쳐 피폐하게 만들었던 도요도미 히데요시(豊臣秀吉) 그를 키운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 그리고 '쇼군(將軍)'시대 마지막 사무라이로서 천하통일을 이룩하고 지금의 도요쿄(東京)에 소위 '에도'시대를 연 도꾸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도 살아있다.

흔히 전해져 오는 이야기, 새가 울지 않으면 목을 쳐서라도 울게 한다는 오다 노부나가, 울도록 유도한다는 도요도미 히데요시, 울 때 까지 기다린다는 도꾸가와 이에야스, 그 정신은 상황에 따라 각기 패턴을 달리할 뿐 일본 지도자의 정신으로 정치, 외교, 경제 등 모든 분야에 살아 있는 것이다.

특히 도쿄에서 신간센 고속철도로 1시간 쯤 북동쪽에 위치한 닛꼬(日光)에 있는 도꾸까와 이에야스의 묘는 성역화 되다시피 일본인의 추앙을 받고 있었으며 참배객의 행렬이 끊이질 않고 있었다. 도쿄에서 닛꼬를 가노라면 일본의 신수도후보지 도치키(?? 木)현을 통과하게 되는데 새로 들어 설 정부청사, 국회의사당의 위치 등 안내판이 전철역에 서 있을 뿐 17년째 그대로 방치하고 있었다.

왜 그럴까? 이인구계룡장학재단 이사장(13·14대 국회의원)은 이곳 주민들이 수도가 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수도권에 야채, 과일 등 풍부한 농작물을 공급하며 풍요롭게 살고 있는데 이 보금자리를 내어 주고 불안정한 떠돌이가 되어야 하는 것을 주민들이 거부하기 때문이라는 것.

그래서 이곳 주민들은 수도이전을 추진했던 국회의원을 선거에서 낙선시키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17년이나 실행을 못하고 있는 일본의 수도이전-남달리 가슴에 와 닿는 것은 왜 그럴까?

이밖에도 우리나라 같으면 과거사 바로 잡는다고 철거했을 황궁과 마주하고 있는 맥아더 미점령 군사령부 건물 그리고, 도오쿄 도청(都廳), 전철역 등 공공 건물에 어김 없이 큰 면적으로 자리 잡고 있는 서점, 지금도 기업인들에게 화두가 되어오는 고 이병철 삼성회장의 질문 '도쿄에 까마귀가 몇 마리인가?'로 유명한 1만 7900마리나 된다는 도쿄의 까마귀들… 모두가 인상적이었다.

이번 계룡장학재단의 일본역사탐방은 다시 한 번 일본의 내면을 접하는 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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