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 출생… 한국 근대 춤의 아버지
40여 종 이르는 전통무용 재구성
당대 최고 명창 북장단 도맡기도

▲ 홍성군 홍성읍 홍주문화회관 앞에 있는 한성준 선생 동상. 이경림 명예기자

한국 근대 춤의 아버지라 불리는 한성준(1874~1941) 선생은 홍성군에서 태어났다.

한성준 선생은 원래 청주 한씨로 양반이었으나 역적으로 몰리는 바람에 신분 하락과 함께 집안이 몰락했다고 한다.

7세 때 백운채로부터 춤과 장단 그리고 광대로 유명했던 서학조를 거쳐 수덕사에 독학에 이르기까지 한성준은 춤과 장단을 익히는데 주력했다. 유년기와 청년기를 고향에서 보내고 홍성·서산·태안 일대에 연행되는 각종 굿과 민속 예능에 폭넓게 접한다.

이러한 체험은 전통무용을 재구성하고 집대성하는 과거에 훌륭한 참고 자료가 됐다. 20대 중반 아내와 사별 후 상념에 빠진 한성준은 전국 유량을 떠난다. 각 지역의 민속 예능과 권번의 기방 예술은 그의 기량과 예술 세계를 알차게 하는 계기가 됐다. 유량 생활을 청산하고 서울 무대에 등장한 한성준은 명고수로 이름을 얻었다.

원각사 광무대에 정기적으로 출현해 당대 최고 명창들의 북장단을 도맡아 치면서 고수로서의 입지를 굳혀 나간다. 고종으로부터 참봉이라는 벼슬을 하사받아 궁중어전에 나가 기예를 선보일 수 있는 자격을 부여 받는 등 신분특권을 누리기도 했다.

송만갑 협률사 일원으로 활동하다 한일 합방으로 단체가 해체되자 권번의 춤 선생으로 소일하거나 부유한 집안의 사시놀음에 참가하기도 한다. 1934년 국악인들의 모임체인 조선성악연구회에 참여한 경험을 살려 1938년 조선음악무용연구소를 설립하고 후진 양성을 위에 남은여생을 바친다.

조선음악무용연구소는 전통춤 교육의 산실로 오늘날 전통춤계의 기라성 같은 인물을 낳고 키운 곳 이다. 1930년대 말에는 무려 40여종에 이르는 전통춤을 재구성하고 극당 무대화하는 작업을 펼치며 마지막 예술혼을 불태운다.

1941년 작고하기 몇 달전에 수상한 조선 예술상은 바로 이러한 업적을 높이 평가한 결과다.

한성준은 한말에 태어나 한일 합방을 지켜보았고 일제 강점기를 통과하는 역사적 격변기를 살았다. 전국을 유량하며 전통 예능의 현장을 두루 체험하고 기방 예술의 총본산인 권번을 접하면서 실로 다양한 전통 예술을 몸소 체득 이를 바탕으로 전통춤을 재구성하고 집대성해 무대 양식화하는 작업을 도모했고 오늘날 전통춤계의 우뚝한 위치에 있는 많은 제자들을 길러냈다. 당대 최고의 명창들의 장단을 도맡아 치는 명고수로 활약하기도 했다.

명고수이자 명무로 칭하는데 아무도 주저하지 않을 만큼 그는 진정한 광대이자 전통 예인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인물이다.

한성준 선생의 고향인 홍성에 선생의 기념사업단이 구성돼 한성준 선생의 춤과 고수를 배우고자 하는 이가 찾아오는 홍성이 되길 바래본다. 이경림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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