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희봉 청주고인쇄박물관 학예연구사

직지는 과거 청주목 인근에 있는 흥덕사에서 금속활자로 인쇄된 가장 오래된 책으로 공인됐다. 여기에 금속활자 발명, 지식 정보 혁명, 과거 청주인의 뛰어난 창조력, 현대 청주인의 자부심, 우월적 성취에 대한 기대감, 권위 등 다양한 의미가 부가돼 '청주의 직지'라는 문화적 정체성을 형성하고 있다.

직지는 19세기 말 20세기 초 국내에 체류했던 프랑스인에 의해 수집돼 그의 고국에서 처음으로 대중에게 공개됐다. 그는 직지가 청주 흥덕사에서 금속활자로 인쇄된 가장 오래된 책임을 인지하고 자신의 컬렉션에 추가했다. 그가 활판인쇄와 정보혁명을 체험한 서구의 시각과 경험이 반영된 수집관을 지녔을 것으로 추측되는 이유이다. 이후 직지는 '인쇄술'이라는 보편적 기술에 '금속활자의 이른 예'라는 지역적 특성이 더해져 '정보 전달 매체의 전환'이라는 세계사적 주제에 부합하는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기록 유산 목록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직지는 14세기 후반 청주의 오래된 사찰(古刹) 흥덕사에서 승려들에 의해 인쇄됐다. 제작에는 우수한 한지와 먹이 필요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금속활자'는 중요한 구성 요소였다. 과거 이 지역에서 금속을 다루는 기술(冶金術)과 수공업이 발달했을 가능성도 크다. 청주 구도심 한편, 원래의 위치에 남아있는 용두사지철당간은 강력한 청주 호족의 세력을 밝혀주는 기념비적인 유산(masterpiece)이며, 직지의 탄생지(母體)인 흥덕사지에서 출토된 청동북, 청동종, 청동향로 등은 형태와 문양의 제작 수법이 매우 우수하다. 이곳에서 멀지 않은 운천동사지, 사뇌사지, 문화동, 탑동 등지에서도 불교 관련 금속기물들이 다량으로 출토돼 고려시대 청주의 금속가공 기술력은 그 입증자료가 차고도 넘친다. 이러한 시공간 속에서 제작된 금속활자의 사용은 자연스럽게 이뤄졌을 것이다.

전통과 역사를 다루는 정책들은 다른 문화와 구별되는 우리의 우수성과 독창성을 최대한 찾아내고 엮어 상품화하는 것을 중요한 목표로 삼아왔다. 이와 더불어 글로벌한 시대에 우리 문화의 독창성을 지속해서 강조하는 것만이 타인과 타 문화를 효과적으로 습득하고 포용하는 효과적인 방안인지에 대한 성숙한 고민도 함께 필요하다.

인쇄술은 보편적 기술의 하나로 지역별로 다양한 인쇄 방법이 시도됐으며, 타당하고 합리적인 나름의 방법을 발달 시켜 왔다. 나무·금속·돌 등 여러 가지 재료를 통해 생각을 담는 노력은 각자가 처한 상황과 시대의 맥락 속에서 필요에 의한 생산을 지속해왔다. 다양한 문화유산, 기록 유산을 대하는 '상호 이해'와 '네트워킹'은 직지라는 유산을 품은 청주가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지녀야 할 글로벌한 관점의 하나이며, 이를 통해 진정한 교류의 접점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소중한 가치에 대한 지속적인 이행과 신뢰가 필요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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