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일규의 서예이야기<396>

전국시대(戰國時代) 제(齊)나라에 안촉이라는 덕망 높은 선비가 살았는데, 그는 벼슬에 뜻이 없어 은거생활을 하고 있었다.

어느 날 안촉이 제선왕(齊宣王)의 부름을 받고 입궐했다. 선왕이 거만하게 앉은 채로 말했다.

“촉은 이 앞으로 오시오.”

안촉은 그 자리에 서서 말했다.

“대왕이 제 앞으로 오시오.”

선왕은 불쾌했고, 앉아 있던 만조백관도 흥분해 안촉의 불손한 태도를 나무랐다. 그러나 안촉은 태연하게 대답했다.

“제가 만약 대왕 앞으로 걸어 나간다면 권세에 아부하는 것이 되지만, 대왕이 저에게 걸어 나오면 자신을 낮춰 선비를 예우하는 것이 될 게 아닙니까?”

이 말을 듣고 난 선왕이 낯을 붉히며 말했다.

“도대체 선비와 임금 중에 누가 더 고귀하단 말이오?”

안촉은 “그야 물론 선비가 임금보다 고귀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선왕은 “이유를 설명해 보시오”라고 물었다.

안촉은 “전에 진(秦)나라가 우리 제나라를 치기 위해 노나라를 지날 때는, 선비 유하혜(柳下惠)의 무덤 주변 오십 보 안에 있는 초목을 건드리는 자는 모두 참형에 처한다고 명령했습니다. 그러나 제나라 임금의 목을 베어 오는 자에게는 만호후(萬戶侯)에 봉하고 황금 천일(千鎰)을 내린다고 했는데, 이를 보면 살아 있는 임금의 머리가 죽은 선비의 무덤보다 못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 말을 들은 선왕은 안촉이 비범한 인물임을 깨닫고 자신의 무례를 사과하며 벼슬자리를 권했으나, 그는 사양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식사를 늦게 하면 음식이 고기처럼 맛이 있을 것이고(만식이당육:晩食以堂肉), 천천히 걸어 다니면 수레를 탄 것과 같이 편안함을 느낄 것입니다(안보이당거:安步以當車). 또 죄를 짓지 않으면 귀하게 될 것이고, 마음을 맑고 올바르게 가지면 스스로 즐거울 것입니다.”

하늘같이 높은 임금의 권위에도 전혀 비굴하지 않고 부귀영화의 유혹에도 빠지지 않으며 안보당거(安步當車)의 여유를 즐기는 진정한 선비정신이다. 요즘도 청빈을 자기의 안목으로 삼아 독야청청(獨也靑靑) 하는 학자도 있을 듯하다. 공직자·지도자 덕망(德望)의 본보기로 삼아 국가의 번영을 위해 청렴함을 가지는 귀감이 돼 보자.

<국전서예초대작가·청곡서실 운영·前 대전둔산초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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