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현 대덕구청장

코로나19(이하 코로나)가 지워버린 일상에도 늦은 봄이 깃들고 있다. 안심하기는 이르지만 엄마, 아빠 손을 잡고 나들이 나온 아이들을 보니 웃음이 나온다.

하지만 가정의 달에 마주한 이 평온한 일상 뒤에 마음을 무겁게 하는 소식들이 날아들고 있다.

코로나 확산을 막기 위한 물리적 거리두기 기간 동안 가정폭력과 아동학대 사건이 전 세계적으로 급증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달 말 영국 유력일간지 가디언에 따르면 유엔인구기금(UNFPA)과 연구협력기관인 미국 존스홉킨스대학, 호주 빅토리아대학 연구팀 등은 코로나19 관련 규제로 193개 유엔 회원국에서 지난 3개월간 가정폭력이 평균 20% 늘어난 것으로 추산했다.

증가한 비율을 건수로 환산하면 총 1500만 건에 달한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안토니오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지난달 각국 정부가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우리지역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1~3월 대전지방경찰청에 집계된 가정폭력 신고건수는 1548건으로 지난해 1466건보다 5.6% 증가했다.

아동학대는 더 심각하다.

신고건수가 지난해 1~3월 113건에서 올해 같은 기간 171건으로 51.3%나 늘었다. 코로나19 환자가 본격적으로 늘기 시작한 2월만 보면 작년 22건에서 올해 48건으로 118.2%나 껑충 뛰었다. 전문가들은 보육 피로도 누적과 경제적 위축으로 인한 부모의 스트레스가 아동학대로 이어졌다고 설명한다.

‘코로나 블루’로 불리는 우울과 무기력, 고통이 폭력으로 변질돼 가정 내에 가장 약한 존재인 여성과 아이에게 전이되는 것이다.

신고전화와 폭력사건의 증가가 모두 코로나19 때문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신고건수가 늘었는지, 줄었는지 여부도 국가별로, 지역별로, 시기별로 조금씩 다르다.

신고건수의 증감보다 중요한 건 숫자가 담아내지 못한 은폐된 폭력의 가능성이다.

자택격리 상황에서의 폭력은 피해자의 고립감과 무기력을 키운다.

피해자 지원 기관들이 코로나19로 운영을 중단하면서 대면상담과 치료가 중단됐다.

기관들은 학대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온라인이나 유선전화를 통해 비대면 상담을 유지하고 있지만 상담은 제한적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다.

상당기간 자택을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에서 피해자와 가해자가 분리되지 못해 신고가 이뤄지지 못하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피해자들이 용기를 낼 수 있도록 돕는 것도 중요하지만, 특수한 상황에서 빚어진 폭력에 적절히 대응하기 위한 실질적인 대책과 사회적 관심이 필요하다.

재난 상황에서도 피해자를 가해자와 분리하고 자립을 도울 수 있는 쉼터가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재정적·행정적 지원을 고민해야 한다. 우리 구는 가정폭력 예방을 위해 폭력예방 및 대응체계를 확대해 나가고 있다.

가정폭력상담소와 민·관 협력을 통한 지역사회 연대망을 상시 운영 중이고 지난해 10월부터는 아동학대 쉼터를 새롭게 개소해 학대피해아동의 심신회복과 가정 복귀지원을 돕고 있다.

이런 정책들을 통해 여성친화도시 조성 등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 가기 위해 행정력을 모으고 있다.

전 세계인이 심리적·신체적·경제적 위기를 겪으며 2020년 봄을 힘겹게 지나가고 있다.

비록 바이러스의 창궐이라는 불가항력의 공포가 삶을 옭아매고 있지만, 도움을 구하는 희미한 목소리도 놓쳐선 안 된다.

위기 속에도 자신보다 어려운 사람들에게 관심을 더 기울일 수 있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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