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지영 명예기자
▲ 임지영 명예기자

몇 년 전 친구A가 말했다. 길을 걷다가 엄마와 비슷한 나이의 아주머니들을 보면 왠지 모르게 눈물이 난다고."예전엔 몰랐는데 어느새 나이 든 엄마의 모습이 순간 느껴져서."

당시 나는 우리 엄마는 더 젊고 바로 알아볼 수 있는데라고 생각하며 친구의 마음이 이해될 것 같으면서도 이해되지 않았다.

며칠 전,운전을 하고 엄마에게 가던 길이었다. 집 근처에 거의 왔는데 엄마가 지나가길래 엄마가 어디 다녀 오나라면서 부르려고 다시 보니 엄마가 아니었다. 그제서야 문득 몇 년 전 친구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이제는 나도 엄마 닮은 사람만 보아도 엄마처럼 보이는 사람이 돼버렸구나. 우리 엄마도 그만큼 나이가 들었구나.

독립해 산 지 7년,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항상 '밥은 잘 먹니?','엄마가 반찬을 못해줘서 미안하네.','엄마가 일을 못해서 돈을 못 버네.'라며 이야기를 하신다. 그때마다 나는 엄마의 시간을 돌아본다. 엄마는 병원을 3군데나 가시면서도 3남매를 위해 매일 식당으로 일을 가셨다.딱 내 나이 33살에 엄마는 3남매가 좋아하는 음식을 먹이겠다고 매일을 사셨다.얼마나 우리를 위해서 살았는지 차마 가늠할 수조차 없다.어린 시절 엄마가 다리 아프다고할 때,손목에 파스를 붙일 때 막연하게 식당 일은 힘든가보다 생각했다.류마티스,당뇨가 20대부터 있던 엄마가 그 몸으로 끼니,휴식도 적은 식당 일이 얼마나 힘드셨을까.

이제 엄마는 대학병원에서만 과를 6군데를 가시고,허리가 아프셔서 정형외과를 카페처럼 가신다. 3남매를 생각하며 사셨던 엄마의 시간에는 아픔만 남았다.돌려드리고 싶어 쓰시라고 드린 신용카드로 엄마는 정말 병원만 가신다. 딸이 힘들까봐.철없던 시절 엄마의 안부는 잔소리였지만,어른이 된 나에게 엄마의 한마디는 사랑이다.엄마의 마음을 헤아릴 수 가 없다.조현병으로 어린아이 같아져 누군가를 못 알아보는 순간에도 엄마는 자식들의 이름을 부르고 자식들을 알아본다.무의식인 순간에도 말이다.그래서 나는 딸이고 엄마는 엄마인가보다.

임지영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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