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일규의 서예이야기 395]

▲ 심복지환(心腹之患). 박일규 서예가 제공

춘추전국(春秋戰國) 오왕(吳王) 합려(闔閭)는 월(越)나라와의 전투 중 은 상처가 도져서 죽음에 이르자, 아들 부차(夫差)에게 이 원한을 잊지 말고 갚아달라고 유명(遺命)했다.

합려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부차는 초(楚)나라에서 망명해 온 오자서와 백비를 중심으로 은밀하게 군사들을 조련하는 한편, 항상 땔나무 위에서 잠을 자며 아버지의 유명을 상기하고 월왕(越王) 구천(句踐)에 대한 복수의 칼을 갈았다.

이 소식을 들은 구천은 범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선제공격을 감행했다.

그러나 적개심에 불타는 오군(吳軍)에게 참패하고 회계산(會稽山)으로 도망쳤으나 겹겹이 포위되고 말았다.

진퇴양난에 빠진 구천은 범려의 권고로 항복을 구걸했다. 이때 오자서는 이번 기회에 구천을 죽여 버리고 월나라를 멸망시키지 않으면 후한을 남긴다고 간했으나, 부차는 구천을 먹은 간신 백비의 말을 더 신임하여 항복을 받아들이고 말았다.

구천은 대부 문종(文宗)을 월나라에 남겨두고 자신과 범려는 오나라로 들어가 마구간에서 일을 하고 목장에서 막노동도 서슴지 않았다.

심지어는 부차의 대변까지 맛보며 건강상태를 체크하는 등으로 신임을 쌓아갔다.

오직 복수의 일념으로 온갖 굴종을 감내했던 것이다.

이렇게 3년이 지나자 부차는 구천이 진심으로 순종한다고 믿고 그의 나라로 돌려보냈다.

이미 오나라의 속국이 된 월나라로 돌아온 구천은 대들보에 쓸개를 매달아 놓고 늘 그 쓴맛을 보며 회계의 치욕을 상기시켜 복수를 다짐했다.

그러나 겉으로는 부차에게 변함없는 충성을 보여 그의 경계심을 낮추고 서시(西施)를 비롯한 미인들을 보내 환심을 사기도 했다.

그로부터 5년 후 이웃 제(齊)나라의 경공(景公)이 죽은 뒤 내분이 일어나자 부차는 이 기회를 틈타 군사를 일으켜 제나라를 공격하려고 했다. 그러자 오자서가 이를 극구 만류하며 말했다.

“제나라는 우리에게 쓸모가 없는 자갈밭이나 마찬가지이므로 이익이 없습니다. 그러나 월나라는 우리에게 몸속의 병(心腹之患)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겉으로는 복종하는 체하지만 머지않아 나라의 치명적인 화근이 될 것이니, 제나라를 치기 전에 월나라부터 정벌해야 합니다.”

그러나 오자서의 말을 듣지 않은 부차는 마침내 월나라에게 멸망하고 말았다.

일상적인 우리들도 가정·국가의 존망을 항시 점검하고 미래를 내다보지 않는다면 모두가 심복지환(心腹之患) 되므로 앞날의 계획을 철저히 대비 유비무환(有備無患) 정신을 발휘하자.

<국전서예초대작가·청곡서실 운영·前 대전둔산초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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