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을석 충북교육청 정책연구소장

박을석 충북교육청 정책연구소장

코로나19 감염증 사태를 겪으며 참 많은 것들을 새로이 보고 듣고 생각하게 된다. 그중에 하나가 '선진국'이라는 말이다.

평소 우리나라가 딱히 선진국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는데, 이 유례없는 질병을 겪다 보니 '우리나라가 선진국'이라고 문득 깨닫게 되었다.

외신은 이 질병의 대유행(pandemic)에 대처하는 우리나라 방역체계의 우수성을 칭찬하며, 한국이 '방역선진국', '방역모범국'이라고 연일 보도하고 있다.

반면 전통적 선진국들은 초기대응 부진과 의료체계 붕괴로 확진자와 사망률이 치솟아 심각한 사회적 재난에 처했다.

평범한 소시민으로서도 나라가 자랑스럽고, 자긍심을 갖게 되었으니 기쁜 일이다.

일부 국민은 뛰어난 방역 대응을 정치지도자의 공으로 치환하면서 '문재인 보유국'이라는 발언도 서슴지 않는다.

우리나라가 이른바 '방역선진국'으로 불리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몇 가지 거론되는 것은 메르스(MERS) 사태의 경험에서 배운 방역체계의 준비와 운용, 헌신적이고 협력적인 시민성, 컨트롤 타워인 질병관리본부의 일관성 등이다. 투명한 정보공개, 광범위한 검사와 조기 격리, 신속한 방역 대응 등도 우수한 점이다.

사실, 우리나라가 선진국이라는 느낌은 개인적으로 좀 당황스럽다. 기성세대로서 가진 과거 경험 때문일 것이다.

박정희 시대 때, 초등학생 어린 나이에 '조국 근대화'라는 어마어마한(?) 말을 들었다. 우리나라는 한시바삐 전근대 봉건성, 후진성을 탈피하고 근대문명의 국가가 되어야 한다고 배웠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근대화는 곧 공업화였고, 게다가 서구화이기까지 했다.

김영삼 정부 때는 '세계화'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우리나라 시스템, 사회문화 등을 '세계적 표준'(global standard)에 맞게 뜯어고쳐야 한다고 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했고, 일상생활에서도 '국제표준화기구(ISO) 인증'과 같은 표현을 접하게 되었다.

이명박 정부 시기는 '선진화'를 부르짖었다.

선진 일류국가가 국가 비전이었으며, 이를 위해 정부조직 개편, 민영화 효율화, 행정규제 혁신 등을 내세웠다. 얼마만큼 성과를 냈는지 모르겠으나, 신자유주의 정책의 폐해가 기억에 남는다.

기성세대는 근대화, 세계화, 선진화 구호를 들으며 성장했고 생활해왔다. 이들 구호 속에서 우리나라는 후진국이었고 기껏해야 개발도상국이었다. 선진국은 저 멀리에 있었고, 배워야 할 기준이나 표준은 언제나 우리 밖에 있었다. 선진국의 기준과 표준을 수입하는 것, 또는 그러한 기준이나 표준에 우리를 끼워 맞추는 것이 우리의 과제였다.

그러다 보니 국민은 열등과 선망의 이중 감정을 가져야 했고, 열심히 베끼고 흉내 내면 성공할 것이라고 믿었다.

모든 면에서 앞선 유럽이니 미국이니 일본이니 하는 선진국들을 그저 좇아가기만 하면 된다고 말이다.

그런데 웬걸, 우리나라가 맨 앞에 서 있었다는 사실을 문득 깨닫게 된 것이다. 적어도 방역에서는 우리가 선진국이었다. 어느 외국, 선진국이 아니라 자기 경험에서 배우고 대비해서 이룬 선진국이었다.

과거 우리는 막연히 모든 분야에서 선진인 나라가 있다고 착각한 면이 있다. 우리나라 아닌 다른 어떤 나라가 선진국일 것이라고 무턱대고 믿기도 했다. 이런 오인과 맹신을 넘어설 때도 되었다.

차제에 방역선진국, 의료선진국을 넘어 분야별로 우리가 성취한 선진성을 살펴보면 어떨까. 아직도 후진적인 것들은 무엇이 있는지 찾아보고 개혁하면 어떨까. 나아가 선진의 기준, 표준을 우리 스스로 만들어낸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왕이면 교육의 세계적 표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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