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시대(春秋時代) 노(魯)나라의 애공(哀公) 시절에는 세도가 있는 가문들이 많은 가병까지 거느리면서 세력이 너무 커지는 바람에 군주의 영양력이 크게 약화됐다.

그 중에서도 맹손(孟孫)씨, 숙손(叔孫)씨, 계손(季孫)씨 등 이른바 삼환씨(三桓氏)가 권력의 핵심부를 나눠 차지하고 멋대로 횡포를 부렸다.

애공은 이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면서도 그들의 세력이 너무 강해 손을 쓰지 못하는 형편이었다.

어느 날 애공이 월(越)나라 방문을 마치고 돌아오던 길에 마중 나온 문무 대신들을 초청해 연희를 베풀었다. 연희에는 맹손씨를 대표하는 맹무백과 계손씨를 대표하는 계강자 등 많은 대신이 참석했다.

이때 몸집이 매우 비대한 대부 곽중(郭重)도 참석했는데, 그는 언행이 신중하고 성실해서 애공의 신임을 받고 있었다.

평소에 흰소리를 잘하는 맹무백이 애공에게 축주(祝酒)를 올리고 나서 곽중에게 한마디 했다.

“곽공(郭公)은 뭘 먹고 그렇게 살이 쪘는가?”

이 말을 듣고 무안해서 쩔쩔매는 곽중을 대신해 애공이 한 마디 했다.

“그렇게 말을 많이 먹는데 살이 찌지 않을 리가 있겠소?(시식언다의 능무비:是食言多矣 能無肥)”

이 말을 들은 맹무백은 자기를 빗대서 한 말임을 알아채고 얼굴을 붉히면서 언짢아했다.

맹무백도 애공이 자신을 빗대어 말한 것임을 알고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식언이비(食言而肥)는 바로 이 이야기에서 나온 성어(成語)로 신용을 지키지 않고 식언을 일삼는 사람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다.

줄여서 식언(食言)으로 많이 쓰이며 반드시 약속을 지키는 것을 가리켜 ‘결불식언(決不食言)’이라 한다. 이 고사는 ‘좌씨전’의 ‘애공25년’ 조(條)에 실려 있다.

<국전서예초대작가·청곡서실 운영·前 대전둔산초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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