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교육 카드뉴스 올렸다가 성차별 비판에 급히 삭제

(세종=연합뉴스) 이효석 기자 = 교육부가 부모 교육 콘텐츠라면서 '남녀의 뇌는 다르게 진화했다'는 내용이 담긴 카드뉴스를 게재했다가 네티즌의 비판을 받고 급히 삭제했다.

▲ 교육부가 '남녀 뇌가 다르게 진화했다'는 내용이 담긴 부모 교육 콘텐츠를 공식 SNS에 게재했다가 네티즌의 뭇매를 맞고 급히 삭제했다.[SNS 캡처]
▲ 교육부가 '남녀 뇌가 다르게 진화했다'는 내용이 담긴 부모 교육 콘텐츠를 공식 SNS에 게재했다가 네티즌의 뭇매를 맞고 급히 삭제했다.[SNS 캡처]

1일 교육계에 따르면, 교육부는 전날 페이스북과 네이버 블로그 등 공식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남자의 뇌를 가진 아빠, 공감이 뭐길래 꼭 배워야 하나요?'라는 카드뉴스를 올렸다.

교육부는 지난달부터 부모 교육을 위해 '아버지를 위한 자녀교육가이드'라는 카드뉴스 콘텐츠 시리즈물을 업로드하고 있는데, 전날 카드뉴스는 제3탄이었다.

이번 카드뉴스는 "왜 아빠는 엄마에 비해 공감을 잘하지 못할까"라고 시작하더니 "체구가 작았던 인류는 공동체 안에서 각자 역할을 나눠 수행했으며, 생존과 종족 번식을 위해 엄마와 아빠의 역할을 구분했다"고 논리를 펼쳤다.

그러면서 "엄마는 공동체의 도움을 받아 양육하는 역할을 담당하게 됐고, 아빠는 사냥과 낯선 적으로부터 공동체를 지키는 역할을 담당하게 됐다"며 "이 과정에서 여자의 뇌와 남자의 뇌가 점차 다르게 진화했다"고 주장했다.

여자의 뇌는 양육을 위해 공감과 의사소통에 더 적합하게 진화했고, 남자의 뇌는 효과적인 사냥을 위해 논리·체계를 이해하고 구성하는 데 더 적합하게 진화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카드뉴스는 "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공동체가 변화하면서 남녀로 양분된 양육 시스템의 '효율성'이 흔들리기 시작했다"며 "그러나 아빠의 뇌는 여전히 공감 및 의사소통 능력이 부족한데, 이는 자녀와 갈등을 초래하는 원인이 되기도 하므로 아빠가 엄마 등으로부터 공감과 소통 방법을 배워야 한다"고 끝맺었다.

트위터 등 SNS에서 "2020년에 올라온 게시글 맞느냐", "유사 과학 아니냐", "'울산 교사' 등 학생들에게 성희롱하는 교사를 왜 해결 안 하나 했더니 교육부가 역시 이런 수준이다" 등의 비판이 쏟아지자 교육부는 몇 시간 만에 카드뉴스를 삭제했다.

교육부가 카드뉴스에 담은 논리는 이른바 '진화심리학'으로 불리는 심리학 내 소수 분파 학문에서 주장하는 내용이다.

진화심리학 계열의 주장을 펼치는 학자들은 인간, 특히 남녀의 뇌가 성별 역할에 따라 다르게 진화해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런 진화심리학은 기본적으로 실험이나 통계로 입증된 적이 없어서 다수 과학계의 비판을 받고 있다. 성 불평등 문제를 설명하려고 들면서 오히려 성차별적 고정관념을 강화한다는 비판도 받는다.

인지신경과학자이자 심리학자인 코델리아 파인은 저서 '젠더, 만들어진 성'에서 "고정적인 남녀의 뇌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뉴로섹시즘(neurosexism·뇌 성차별)'일 뿐"이라며 "사람들은 성적 불평등의 이유를 사회적 불공평에서 찾기보다 남녀의 타고난 차이 탓으로 돌리는 것을 더 편하게 생각한다"고 비판했다.

마리 루티 토론토대 교수도 저서 '나는 과학이 말하는 성차별이 불편합니다'에서 "진화심리학이 말하는 남녀의 차이는 노골적인 성 고정관념에 기댄 '젠더 프로파일링'이자 유해한 이분법"이라고 촌평했다.

교육부는 카드뉴스 제작 경위에 관해 "국가평생교육진흥원 학부모지원센터에서 EBS 프로듀서와 심리학과 교수 등 부모 교육 전문가를 섭외해 제작하는 콘텐츠"라고 해명했다.

여기 참여했다는 심리학과 교수 A씨가 진화심리학 계열의 주장을 주로 펼치는 인물로 확인됐다. A씨는 2014년 발간한 저서에서 "남자와 여자는 이미 뇌 구조가 다르다, 하드웨어 자체가 다르게 태어났다"고 주장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카드뉴스가 시대적으로 뒤처지고 성 인지 감수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있어서 우선 삭제했다"며 "양성평등 전문가 조언을 받아서 수정·보완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hy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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