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항제련소 전경. 서천군 제공

75 장항제련소와 생태공원
직원 수 1300명의 '대규모 시설'
장항 제련소, 조선총독부서 세워
진남포·흥남 제철소와 함께 명성
1976년 5만t규모 생산시설로 확장
굴뚝 아시아 최고 높이 자랑
변화 거듭하며 환경오염 심해져
정부, 마서면에 국립 생태원 건립
학술적 연구·관광객 유치 기여
극지관 등 기후별 전시관 눈길

남북을 통틀어 한반도에서 뿐 아니라 아시아에서 제일 높은 굴뚝이 우리 충남 서천에 있다.

해발 210m 전망산, 위 110m의 장항 제련소 굴뚝이 그것이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대천해수욕장에서도 보이고 전라북도 군산에서 까지 보이는 굴뚝이니 그 높이를 짐작할 만하다.

굴뚝이 높아 흘러가는 구름이 걸쳐 있기도 하고, 군산에 있는 미 공군기지에서는 비행에 지장을 준다며 철거를 요구한 적도 있다.

뿐만 아니라 6·25전쟁 때에는 맥아더 UN군 사령관이 인천 상륙작전을 하면서 북한군을 속이기 위해 장항에 상륙하는 것처럼 이 높은 굴뚝을 표적으로 함포 사격을 한 바 있다.

일제 식민시대인 1936년 조선총독부는 이 땅의 광물 수탈을 위해 장항제련소를 세웠는데 직원 수가 1300명이나 되는 대규모 시설이었다.

그래서 장항 제철소는 진남포 제철소, 흥남 제철소와 함께 조선의 3대 제철소로 명성을 날렸다.

해방 후 정부수립 후에는 남·북이 분단됨으로써 유일한 종합제철소로 역할이 커졌으며 포항제철 등이 세워지기 까지는 한국을 대표하는 산업의 상징이 되어 초등학교 교과서 표지가 되기도 했다.

5·16후 1961년, 군복 차림의 최고회의 의장으로써 박정희 대통령이 장항제철소를 방문, 큰 관심을 보였던 것도 그런 위상을 말해 준다.

어쩌면 박정희 대통령은 이곳에 와서 한국의 산업화를 위해서는 더 큰 규모의 제철시설, 즉 포항 제철 같은 필요성에 대한 영감을 얻었는지 모른다.

어쨌든 초기에 동제련에서 출발한 장항제련소는 1964년에 연제련공장이 준공되고 1971년 민영화가 되면서 더욱 규모가 커져 1974년 1500t, 1976년에는 다시 5만t 규모의 생산시설로 확장되었다.

▲ 국립생태원 전경.  서천군 제공
▲ 국립생태원 전경. 서천군 제공

그리고 1984년에는 스테인레스파이프 공장도 세워져 제품의 국내 수요는 물론 해외수출에도 크게 기여했다.

1989년에는 LG그룹에서 인수, LG금속 장항공장으로 변신했고 2005년에는 LG산전 장항공장으로 다시 이름을 바꿨다.

이렇게 장항제철이 변신을 거듭하며 시설이 확대되는 동안 주변에는 점점 환경을 악화시키는 검은 그림자가 쌓여가고 있었다. 공장에서 나오는 잿더미가 세월이 흐르는 동안 큰 산으로 변했고, 주변 농토의 토양오염은 가사상태에 까지 이르고 말았다. 1급 발암물질인 비소, 카드륨 등등.

더 이상 환경오염을 방치할 수 없게 되자 정부가 나서 굴뚝 중심 반경 4km의 땅을 2000억원을 들여 매입하여 정화작업에 나서는 한편, 가까운 마서면에 국립 생태원을 세우는 등 이 지역을 크게 변화시키고 있다.

특히 이곳의 국립 생태원은 우리나라 뿐 아니라 세계적인 생태공원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어 학술적 연구는 물론 이 지역 관광객 유치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

이곳에 오면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기후별 전시관이 있는 데 이를테면 남극과 북극의 극지관, 온대관, 사막관 등이 그것.

그래서 아마존 습지에 와 있는 것 같은 착각을 주기도 하고 선인장과 사막여우들을 만나면 사막에 서있는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과거 일본의 미곡 유출을 위한 장항 개발과 그로해서 1년에 60만석의 쌀을 선적하던 곳, 동양 최고의 굴뚝을 자랑하며 1300명이나 되는 직원이 북적대던 제련소, 철새 떼 수 십만 마리가 장관을 이루는 장항 금강하구뚝, 그리고 이제는 세계적인 규모의 국립생태공원, 거기에다 백제 최후의 전장이 됐던 기벌포…. 장항에 오면 그래서 가슴이 벅차오는 매력을 느낀다.

<충남복지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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