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수현 금강대학교 대학원장

인류 질병의 역사에서 대표적인 팬데믹(Pandemic, 감염병 세계 유행)은 14~15세기경 중세 유럽지역을 중심으로 확산된 흑사병(Black Death)이다. 근·현대에 와서는 제1차 세계대전시기이던 1918년 즈음에 병사들을 비롯하여 세계적으로 유행하여 전쟁을 종식하게 만들었던 스페인독감(Spanish influenza)으로 1차 대전 사망자수의 5배인 5000만 명 이상이 사망한 팬데믹이 있다. 이 때 일제강점기의 한국에서도 14만 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조선총독부 자료에 기록이 되어 있다. 2020년 3월 11일에는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인수공통감염병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COVID-19)이 3번째의 팬데믹으로 이어져 2020년 4월 말 기준으로 감염자 300만 명, 사망자 20만 명을 돌파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21세기의 과학문명사회에서도 질병에서 비롯된 죽음이라는 '부조리의 공포'에서는 벗어날 수 없는 인간한계와 삶에만 집착했던 자신의 모습과 마주서게 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20세기 실존주의 철학자인 프랑스의 알베르 카뮈(Albert Camus, 1913~1960)는 이러한 인간한계의 '부조리'와 '반항'의 사상을 그의 작품 ‘페스트(La Peste, 흑사병)’(1947)에서 보여주고 있다. 그는 작품 속에서 페스트의 만연으로 외부세계와 차단된 프랑스령 알제리 북부해안의 오랑(Oran)시의 처절한 상황과 죽음의 공포와 이별의 아픔 등 극한의 '부조리' 상황 속에서의 패배할 수밖에 없는 한계 속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인간 군상을 나타내고 있다. 이 작품에서 오늘날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신종코로나와 같은 전염병 바이러스로 인해 겪게 되는 죽음의 공포와 불안에 대하여 카뮈가 남긴 질문은 무엇일까를 생각해보면 그가 설정했던 다양한 군상들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겹쳐지고 있음은 사실이다.

이러한 오늘날의 상황은 카뮈가 말한 '부조리에 대한 반항'의 정신과는 여전히 거리가 멀다. 따라서 인문사회학자로서 필자는 죽음의 존엄성 유지 문제에 대하여 '부조리'와 그에 대한 '반항' 정신이 우리 사회에 자리 잡는 계기가 되기를 제안한다. 이미 한국사회는 전통사회나 가족중심의 관혼상제가 붕괴된 상황에서 정작 인간자신의 죽음문제에서는 존엄성을 보장받지 못할 개연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필자는 팬데믹 등과 같은 재앙으로 발생한 '죽음의 부조리'상태가 아니더라도 국민 누구나 자신의 죽음에 대한 존엄함을 누릴 수 있도록 웰다잉을 계획할 수 있는 법제나 정책이 사회복지적인 차원에서 구축이 되어야 함을 주장한다. 인간이 반려동물보다도 못한 상태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것은 최대의 '부조리'이고 그에 맞서 존엄사 계획을 정부와 개인이 함께 마련해야 하는 것은 카뮈가 오늘날의 한국인에게 요구하는 진정한 '반항'의 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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