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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투데이] 삼국시대 촉한(蜀漢)의 황제 유비가 죽자 공명은 후주(後主) 유선을 도와 천하통일의 대업을 이루려 몸을 아끼지 않고 힘썼다.

몸이 약해 오래 살지 못할 것을 안 그는 더욱 서둘렀다.

위(魏)나라 정벌을 위해 다섯 번씩이나 전략 요충지인 기산(祁山)으로 진출했다가 실패한 공명이 34만 대군을 이끌고 여섯 번째로 기산에 출병했다.

40만의 위나라 군사를 거느린 사마의(司馬懿)와 피를 말리는 지혜 대결을 벌렸다.

사마의는 공명의 신출귀몰한 작전에 여러 번 혼이 난데다 호로곡(葫蘆谷)협곡에 갇혀 불에 타 죽을 위기도 맞았다.

천우신조(天佑神助)로 겨우 목숨을 건진 후부터는 싸움을 피했다.

전투가 소강상태에 빠지자 이번에는 서로 사자(使者)가 오가며 심리전으로 맞섰다.

어느 날 공명의 사자를 맞은 사마의가 “승상께서는 하루 식사량이 얼마나 되오?”라 물었다.

사자는 “하루에 서너 홉 정도밖에 안 드십니다”라고 말했다.

사마의는 다시 “그러면 일처리는 얼마나 하시오?”라 물었고, 사자는 “많은 일을 하신다”고 답했다.

사자가 돌아간 후 사마의가 측근들에게 말했다.

“공명이 먹는 것은 그렇게 적고 일은 많이 해(식소사번:食少事煩) 어찌 오래 살 수 있겠는가?”

과연 사마의가 짐작한 대로 공명은 얼마 못 가 병으로 죽었다.

낌새를 알아챈 사마의가 촉군을 공격했으나 공명이 죽기 전에 부하 장수들에게 일러둔 계교에 걸려 혼비백산해 도망쳤다.

그 사이 촉나라 군대는 무사히 한중(漢中)으로 퇴각할 수 있었다.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는 믿음과 신뢰가 으뜸이다.

그러나 상대의 진심도 모르고 말만 믿을 때가 많다.

항시 부정보다는 긍정이 앞서야 한다.

그러나 ‘식소사번(食少事煩)’에 속지 않도록 주의하자.

<국전서예초대작가·청곡서실 운영·前 대전둔산초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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