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범수 ETRI 기술상용화센터장

요즘 필자는 시쳇말로 코페르니쿠스에게 꽂혔다. 모든 사람이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 믿고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돌고 있다고 믿던 시절인 1543년.

코페르니쿠스는 돈키호테처럼 나타나 지구는 다른 행성들처럼 태양을 중심으로 돌고 있는 작은 행성에 불과하다고 주장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지금은 코페르니쿠스 혁명이라 부르며 그의 업적을 칭송하지만, 당시에는 그의 주장이 얼마나 허황하게 들렸을까?

시간은 흘렀고 2020년이 된 지금 그가 말한 모든 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리고 그로 인해 벌어진 관점의 전환, 즉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었으며 태양의 주위를 도는 많은 행성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서 세계는 코페르니쿠스 이전과 이후로 구획 지을 만큼의 역사적 대변혁을 맞이했다.

코페르니쿠스가 천문학에 대한 이해를 바꾸어 놓음으로 세계를 바꾸어 놓았다면 지금 전 세계를 펜대믹(세계적 대유행) 상황으로 몰아 놓고 있는 코로나19는 우리가 그동안 굳게 믿고 있던 인간에 대한 이해를 바꾸어 놓고 있는 듯 하다.

‘생육하고 번성해 충만하고 땅을 정복하고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라는 성경의 구절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인류의 역사는 ‘인간이 지구의 중심’이라는 생각의 틀 아래에서 세계의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며 진행됐음을 부인할 수 없다.

설령 여러 반격(?)이 있었더라도 그것은 극복의 대상이었을 뿐 인간 중심적 사고를 거역할 만한 이유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 코로나19(이하 코로나) 사태는 인간 중심적 사고체계에 근본적인 물음을 제기하는 듯하다.

과연 지구의 중심은 인간인가? 아니면 지구의 생태계를 구성하는 단 하나의 부분에 불과한 것인가?

코로나가 가장 극심하던 어느 날 우연히 인터넷 댓글 하나를 보았다.

“혹시 코로나는 지구가 끊임없이 자신을 파괴해 오는 인류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내놓은 일종의 백신이 아닐까?”

이 질문은 코로나를 인간의 관점에서 접근하기보다는 우리가 살아가는 ‘지구’라는 거대한 생태계 관점을 반영한다.

인간의 관점에서 보면 코로나는 300만명의 사람을 감염시키고 20여만명 내외의 사망자를 낼 정도로 무서운 바이러스다.

그저 격멸의 대상일 뿐이다. 하지만 지구의 관점에서 보자.

이미 여러 방송 매체에서 다룬 바 있지만 역설적이게도 코로나로 인해 지구가 놀라울 정도로 회복되고 있다.

절대 해결되지 않을 것 같았던 중국의 미세먼지나 공기 오염은 얼마 전 뉴스를 통해 본 위성사진에서만큼은 말끔하게 해결됐다.

인도에서는 수십 년 만에 150㎞나 떨어진 거리에서 눈 덮인 히말라야산맥을 보는 경이로운 순간도 펼쳐졌다.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는 운하의 녹조로 인해 완전히 사라졌던 물고기들이 다시 떼 지어 돌아왔다고 한다.

더 놀라운 것은 코로나19에 의해 희생된 사람보다 대기환경 개선 효과로 인해 살리게 되는 사람의 수가 20배 더 많으리라는 연구결과다.

코로나로 인해 더 많은 사람이 살게 될 수 있다니.

이쯤 되면 “누가 누구한테 바이러스 타령이야?”라는 말이 나올 법도 하다.

어떤 이는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를 다시 호출해 ‘인류의 역사는 도전과 응전의 역사일 뿐’이라며 “코로나 위기도 그동안 인류가 경험한 수많은 도전 중에 하나에 불과하므로 백신과 치료제를 만들어 극복하면 된다”고 답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기에는 그동안 인간이 지구에 초래한 폐해가 너무 컸다.

어쩌면 코페르니쿠스가 1543년에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님을 선언한 것같이 인간이 지구의 중심이 아님을 인정하고 지구와 공존하는 방식을 고민하는 것이 더 지혜로운 선택은 아닐까? 또 다시 이 슬픈 고통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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