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르릉,따르릉"
여든을 코앞에 앞두신 친정엄마 전화벨이 주말 아침을 엽니다.
"열무랑 얼가리배추 넣어 김치 담그었다.바빠도 들러"
친정집 앞에 도착하니 고소한 기름내가 먼저 저를 맞이해줍니다. 아,이것은 가죽부침개? 아니나 다를까 자식 먹이려고 뜰 안에 있는 가죽나무 순을 뜯어 뜨끈뜨근하게 부쳐놓으셨습니다.
"와,엄마 가죽부침개는 최고야"
매일 식구들 챙기느라 바쁜 나를 위해 음식을 준비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이 참 행복했습니다.
클 때, 고집 세고 할 말 다하면서 하고 싶은 일은 다 해보려는 저에게,
"너도 커서 꼭 너 같은 딸 낳아 키워봐라.엄마 마음 알게 될 거다"
알 듯 모를 듯 엄마의 말이 귓등을 스쳐 지나갔는데, 돈 없어 욕심쟁이 딸이 하고 싶은 거 못해 줄 때 엄마 마음이 어땠는지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얼마나 미안하셨을지. 사춘기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가 된 요즘은 이 말이 자꾸 자꾸 떠오릅니다.
내 딸들이 이기적이고 시크할 때, 시간 아까운 줄 모르고 늦장 부릴 때, 자신이 얼마나 이쁜지 모르고 외모 걱정할 때, 무리한 욕심을 부릴 때마다 울 엄마도 이렇게 가슴이 먹먹했겠네. 늦게나마 엄마 마음을 짐작해봅니다.
여자가 무슨 대학이냐는 친척들과 아빠께 배움에 남자, 여자가 어디 있고 하고 싶은 일 해야 행복한 건 다 똑같은 거라고, 대학 등록금 마련해주시느라 힘들어도 공부하라고 밀어주신 내 인생 은인이신데….
"마스크 꼭 쓰고, 잠 충분히 자고, 아침밥 꼭 먹고 차 조심혀고"
이제는 제가 보살펴드려야하는데, 제가 김치 담궈 갖다드려야 하는데, 오늘도 팔순 다된 울 엄마는 자식 걱정에 이것저것 당부가 끝이 없습니다.
'엄마, 오래오래 사세요. 사랑합니다'
이영옥 명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