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영옥 명예기자

"따르릉,따르릉"

여든을 코앞에 앞두신 친정엄마 전화벨이 주말 아침을 엽니다.

"열무랑 얼가리배추 넣어 김치 담그었다.바빠도 들러"

친정집 앞에 도착하니 고소한 기름내가 먼저 저를 맞이해줍니다. 아,이것은 가죽부침개? 아니나 다를까 자식 먹이려고 뜰 안에 있는 가죽나무 순을 뜯어 뜨끈뜨근하게 부쳐놓으셨습니다.

"와,엄마 가죽부침개는 최고야"

매일 식구들 챙기느라 바쁜 나를 위해 음식을 준비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이 참 행복했습니다.

클 때, 고집 세고 할 말 다하면서 하고 싶은 일은 다 해보려는 저에게,

"너도 커서 꼭 너 같은 딸 낳아 키워봐라.엄마 마음 알게 될 거다"

알 듯 모를 듯 엄마의 말이 귓등을 스쳐 지나갔는데, 돈 없어 욕심쟁이 딸이 하고 싶은 거 못해 줄 때 엄마 마음이 어땠는지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얼마나 미안하셨을지. 사춘기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가 된 요즘은 이 말이 자꾸 자꾸 떠오릅니다.

내 딸들이 이기적이고 시크할 때, 시간 아까운 줄 모르고 늦장 부릴 때, 자신이 얼마나 이쁜지 모르고 외모 걱정할 때, 무리한 욕심을 부릴 때마다 울 엄마도 이렇게 가슴이 먹먹했겠네. 늦게나마 엄마 마음을 짐작해봅니다.

여자가 무슨 대학이냐는 친척들과 아빠께 배움에 남자, 여자가 어디 있고 하고 싶은 일 해야 행복한 건 다 똑같은 거라고, 대학 등록금 마련해주시느라 힘들어도 공부하라고 밀어주신 내 인생 은인이신데….

"마스크 꼭 쓰고, 잠 충분히 자고, 아침밥 꼭 먹고 차 조심혀고"

이제는 제가 보살펴드려야하는데, 제가 김치 담궈 갖다드려야 하는데, 오늘도 팔순 다된 울 엄마는 자식 걱정에 이것저것 당부가 끝이 없습니다.

'엄마, 오래오래 사세요. 사랑합니다'

이영옥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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