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연성·유연성·내연성 갖춘 소재 개발
코로나19 백신·바이러스 특성 연구
식품 변질 알려주는 ‘콜드체인’ 스티커
약효 데이터 구축 ‘한국화합물은행’도
국내 화학산업 발전 이끄는 연구 산실

▲ 플렉시블 디스플레이의 핵심소재를 개발한 화학소재연구본부 김윤호(왼쪽) 박사팀. 화학연 제공

[충청투데이 최윤서 기자] 화학은 단지 사이언스 영역에만 머무르지 않고 사회에도 크게 영향을 미친다.

전 세계인들의 일상을 정지시킨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이나 지구 온난화를 일으키는 온실가스 모두 화학의 영역이다.

우리가 입고 쓰는 옷과 스마트폰의 소재도 화학의 산물이며 역으로 지구를 오염시키는 플라스틱 쓰레기 역시 화학이 풀어야 할 숙제다.

과학도시 대전에서 지구와 인류를 위한 화학을 연구하는 ‘한국화학연구원(이하 화학연)’은 국내 화학연구의 산실로 화학산업 발전을 이끌고 있다.

지난해 11월 일본 수출 규제로 인한 소재 국산화의 중책을 맡고 이미혜 원장이 취임한 가운데 ‘화학산업 경쟁력 강화 및 국가·사회문제 해결’이라는 임무 아래 크게 △화학공정 △화학소재 △의약바이오 △정밀·바이오화학으로 나눠 화학 원천기술을 연구·개발하고 있다.

◆실외기 없는 초절전 제습냉방기로 환경 보존

현재 가동 중인 전 세계의 에어컨은 어림잡아 16억대.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이 숫자가 2050년 56억대까지 치솟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렇게 늘어나는 에어컨 숫자를 감당하려면 그만큼의 화석연료 발전과 온실가스 증가 역시 피할 수가 없다. 이에 따라 에너지 절감과 환경 보존의 두 마리 토끼를 함께 잡을 냉방 기술이 화두가 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화학연 장종산(CCP융합연구단 올레핀분리팀장) 박사 연구팀이 전기 사용량을 최소화한 제습냉방 기술을 개발해 관심을 끌고 있다.

이 초절전 제습·냉방기는 ‘실외기 없는 에어컨’으로, MOF 제습제를 이용해 공기 중 수분을 없애고 쓰다 남은 70도 이하의 폐열을 이용해 제습제를 건조·재생시키기 때문에 전기 사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

◆플렉시블 디스플레이의 핵심소재 개발

최근 화학연은 플렉시블 디스플레이의 난제를 풀 수 있는 해결책을 제시하기도 했다.

화학연 김윤호(화학소재연구본부) 박사팀은 포항공대 정성준 교수팀과 공동으로 분자설계를 최적화해 절연성과 유연성, 내열성의 삼박자를 갖춘 폴리이미드 기반의 유연·절연 소재를 개발했다.

절연성을 나타내는 누설전류밀도가 10-9A/㎠ 이하로, 기존의 트랜지스터용 무기 절연체와 유사한 수준이다. 특히 350도 이상의 우수한 내열성을 가지고 있어 기존 디스플레이 패널 제조공정에도 충분히 적용할 수 있다.

제조공정을 단순화하는 데도 성공했다. 그 결과 유연·절연 폴리이미드를 트랜지스터 절연체에 적용해 종이처럼 구길 수 있는 유기 트랜지스터를 제작하는 데 성공했다.
 

▲ ◀전기 사용량을 최소화한 제습냉방 기술을 개발한 화학연CCP융합연구단 장종산 박사 화학연 제공
▲ ◀전기 사용량을 최소화한 제습냉방 기술을 개발한 화학연CCP융합연구단 장종산 박사 화학연 제공

◆신·변종 바이러스 진단·백신·치료 연구에도 앞장

화학연은 전 세계에 대유행하고 있는 코로나19(이하 코로나)와 같은 신·변종 바이러스 연구에도 앞장서고 있다.

화학연을 중심으로 8개 정부출연연구기관이 모인 CEVI(신종 바이러스) 융합연구단은 신종 바이러스의 진단, 백신, 치료제 및 확산방지 기술 개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현재 CEVI 융합연구단은 지난 2월 17일 질병관리본부로부터 코로나 분리주를 분양받아 진단기술, 백신 및 치료제 개발에 활용하고 있다. 특히 지난달 말에는 기존 약물에서 새로운 약효를 발견하는 약물 재창출 연구를 통해 현재 의료현장에서 쓰이는 에볼라 치료제 ‘렘데시비르’의 약효가 가장 우수하다는 중간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신선 배송시장 성장 속 식품 변질 알려주는 스티커 개발

신선배송, 하루배송, 로켓배송 등 다양한 이름을 불리는 콜드체인(Cold Chain)은 배송할 물건을 원산지로부터 소비자에게까지 온전한 상태로 전달한다는 게 핵심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배송 식품이 온도와 환경에 따라 부패할 수 있는 게 걱정거리였다.

최근 화학연 오동엽·최세진(정밀·바이오화학연구본부) 박사팀은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제시했다.

냉장 배송받은 식료품의 변질 여부를 알 수 있는 스티커를 개발한 것이다.

일명 ‘콜드체인(저온유통) 안심 스티커’로 상온(10도 이상)에 노출되면 스티커에 나타나는 이미지로 변질 여부를 알 수 있다.

상온 노출 이력뿐만 아니라 상온 노출 시간까지 알 수 있다.

◆신약개발의 출발점, ‘한국화합물은행’ 20주년 맞아 데이터 플랫폼으로 변모

신약 1개를 개발하려면 가장 먼저 수만 개의 새로운 화합물을 만들어서 테스트해야 한다. 선진 글로벌 제약사들은 자체 보유한 백만 종 이상의 화합물 라이브러리를 활용해 신약을 개발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제약기업은 글로벌 제약사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영세하다. 자체적으로 화합물 라이브러리를 구축하고 관리할 여력이 되지 않는 것이다.

이에 연구자들이 각자의 실험실 냉장고에 있는 화합물을 모아 공동으로 관리하고 활용할 방안을 모색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2000년 3월 한국화학연구원 내에 한국화합물은행이 탄생했다. 벌써 20년 전 일이다.

현재 한국화합물은행은 64만 종의 화합물을 보유한 명실상부 국내 최대 신약개발 플랫폼으로 자리 잡았다. 설립 20년 만에 80배나 성장한 것이다. 약효 데이터도 상당한 규모로 축적했다.

지난해부턴 각각 관리하던 화합물 활용 정보와 실물 화합물 정보를 통합해 내부 관리 시스템을 효율적으로 개선했다.

또 한국화합물은행의 데이터를 해외 공공 데이터와 통합해 사용자에게 제공하고 있다. 점진적으로 수요자 중심의 데이터 플랫폼으로 변모하는 것이다. 최윤서 기자 cys@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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