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 첨단화 과정서 산업원료 필요성·중요성 부각돼
전지분야 바나듐 활용 대두… 광물자원 확보 ‘총성없는 전쟁’
대전·충북·경기 바나듐 매장 추정 연구결과… 긍정적 신호
선광·제련 기술 개발 중요성↑… 기술 선진국 도약 가능성
포천 지역서 관련 연구 시작… 주요 생산국 도약 견인 목표

▲ 바나듐 공정 연구 모습.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제공

[충청투데이 이심건 기자] 과학기술 첨단화는 광물자원, 즉 산업원료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더욱 부각하고 있다. 현재 선진국들은 지구를 넘어 달과 우주의 희귀 자원 확보와 선점을 위해 숨 가쁜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우리나라는 첨단산업의 소재 원료로 사용되는 귀금속이나 희토류 등 광물자원의 99% 이상을 수입하는 자원 빈국이다. 원광석 기준으로 광물자원 수입액이 연간 35조원에 이르는 통계치를 본다면 자원 빈국이라는 단어가 더욱 실감 난다. 일본의 수출규제와 선진국의 전략자원 확보 정책 재편 등으로 인해 국가 간 협업 모델이 깨지고 각자도생해야 하는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린 시점에서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 세계 국가들은 '광물자원의 확보'를 위해 총성 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바나듐 활용의 대두

최근 에너지저장장치(ESS)에 활용되는 '바나듐 레독스(Redox) 흐름전지(Flow Battery)' 개발이 활발히 이뤄지면서 전지 분야의 바나듐 활용이 새로이 대두되고 있다.

전체 바나듐 용도에서 바나듐 레독스 흐름전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2017년 약 2%로 초기 진입 단계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신재생 에너지 산업의 급격한 발전에 맞춰 바나듐 비중이 2030년에는 30% 이상 크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바나듐은 리튬이온전지에 비해 안전한 2차전지를 만들 수 있고 철과 섞으면 탄성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어 활용 가능성이 풍부한 광물자원으로 꼽힌다. 바나듐을 사용한 레독스 흐름전지는 리튬이온전지 용량 대비 가격이 30% 정도 저렴하며, 배터리의 충방전 사이클이 1만 5000회 이상으로 수명도 20년이 훌쩍 넘는다. 더구나 유기용매가 아닌 황산 수용액을 전해질로 사용하기 때문에 화재나 폭발 위험성이 없다. 이에 최근 바나듐 수요가 급증하면서 가격이 10배 이상 치솟은 바 있다.

한국은 2018년에 중국, 미국, 쿠웨이트 등지에서 8400여 t의 바나듐을 수입했으며 금액으로는 약 3400억원 수준이다. 2017년과 비교해 수입량은 큰 차이가 없으나 수입액은 2배 이상 증가했다.

▲ 바나듐 원광.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제공
▲ 바나듐 원광.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제공

◆바나듐 독자 생산 기술 개발의 초석

우리가 쓰는 바나듐의 90%는 철광석 안에 들어 있는 상태인 'VTM(Vanadiferous TitanoMagnetite)광석'에서 뽑아낸다. 현재 전 세계 바나듐 생산의 70% 이상이 VTM광석으로부터 이뤄지고 있다. 나머지 30%는 재활용이나 철광석 외에 다른 광석에서 뽑아낸다. 한국의 땅속에도 쓸 만한 바나듐이 묻혀 있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연구결과 대전과 충북 보은·괴산, 경기 포천 일대에 바나듐이 매장돼 있는 것으로 보고된 것이다. 특히 포천의 티타늄 광산에는 티타늄자철광과 함께 다량의 바나듐이 묻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반가운 소식은 경기도 포천 지역에 매장돼 있는 바나듐 함유광 역시 VTM광석이라는 것이다. 특히 포천 지역 VTM광석 내의 바나듐 함유량, 즉 품위가 최대 0.8%(오산화바나듐 기준) 수준으로 조사되는데, 이는 중국 등에 있는 부존 광에 비해서 최대 50% 이상 높은 수준이다. 바나듐광의 국내 수급 측면에서 매우 긍정적인 신호들이 나타나고 있는 가운데 바나듐 개발의 가격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바나듐 회수를 위한 선광·제련 기술 개발 중요성이 증대되고 있다.

먼저 선광 공정은 일반적으로 VTM광석을 파쇄·분쇄해 1㎜ 이하의 작은 입자로 만든 후 자석을 이용해 자철석만을 농축·회수해 오산화바나듐 함량이 1.5% 이상인 정광을 추출하는 식으로 실시된다.

선광을 거친 정광을 약 1300℃에서 탄산나트륨 또는 황산나트륨과 반응시킨 후 물에 녹이고 여기에 암모늄염을 첨가하는 등 여러 단계의 제련 공정을 거쳐 최종적으로 고순도의 오산화바나듐을 얻는다. 이렇게 얻어진 오산화바나듐은 철과 혼합해 철강 분야에서 사용되는 페로바나듐을 얻거나 황산에 용해시켜 배터리 산업에 사용되는 바나듐 전해액을 얻는 데 이용된다.

VTM광석에 들어 있는 바나듐은 자철석에 철을 치환해 존재하기 때문에 바나듐만을 농축시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더욱이 티탄철석과 자철석이 미세하게 혼합된 구조를 띠고 있어 자철석을 티탄철석과 효과적으로 분리하고 회수하는 데 한계가 있다.

제련 공정에서도 염소가스를 불어넣고 열을 가하는 과정에서 많은 에너지가 투입되는 반면 정광 내의 낮은 바나듐 품위로 인해 바나듐과 탄산나트륨 등과의 반응 효율이 매우 낮아 메타바나듐산나트륨 생성이 쉽지 않다. 이는 결국 제련 공정에서 바나듐의 회수율을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하며 글로벌 선진기업에서도 바나듐 제련 공정에서의 회수율이 약 70%로 타 비철금속 제련의 90% 이상에 비해 매우 낮은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바나듐광 선광·제련·활용 분야의 후발 주자인 우리나라가 관련 기술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 있으며 아직 늦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올해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은 경기도 포천 지역 VTM광석을 대상으로 효율적 바나듐 추출을 위한 선광·제련·활용 연구를 시작해 우리나라가 바나듐 주요 생산국으로 도약하는데 견인차 역할을 하고자 한다.

세계적 수준의 경제적·친환경적인 기술, 즉 디테일이 가미된 맞춤형 선광·제련·활용 기술의 개발을 위해 모든 연구자의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바나듐 자원 개발의 걸음마를 시작하는 단계지만, 우리에게는 과학기술이라는 자신감이 있다.

대한민국 에너지 광물자원의 행복한 미래를 상상해 본다.

이심건 기자 beotkkot@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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