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영헌 열사·419 기념식 축소개최

▲ 지영헌 열사와 제60주년 4·19 혁명 기념식을 지난 17일 오전 11시 단양군 대성산 추모공원에서 최인규 회장을 비롯한 20여명이 참석해 헌화를 가졋다. 단양=이상복 기자 cho2225@cctoday.co.kr

[충청투데이 이상복 기자] 지영헌 열사와 제60주년 4·19 혁명 기념식이 17일 오전 11시 단양군 대성산 추모공원에서 최인규 단양군 4·19 기념사업회 회장을 비롯한 이상우·조성룡 부회장과 김학성 감사, 김재홍 총 동문회장, 유족 등 20여 명이 참석해 지영헌 열사와 시민혁명인 4·19 혁명의 숭고한 정신을 기렸다.

이날 기념식은 손명성 사무국장의 집례로 국민의례와 묵념, 헌화, 추모 인사, 회고사, 기념 촬영 등의 순서로 진행됐다.

특히, '코로나 19' 확산 방지를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 행동지침에 따라 감염예방 및 방역대책을 철저히 수립해 행사를 실시했다.

이 행사에는 당초 300여 명이 참석할 예정이었으나 행사 취소 및 축소로 20여 명으로 인원을 축소해 거행했다.

이어 조남성 고문의 회고사와 오시백 유족의 감사 인사, 조성룡 부회장의 추모사로 이어졌다.

최인규 4·19 기념사업회장은 "추모 인사와 함께 '꺼지지 않는 단양의 빛이여' 양경숙 님의 헌화 시를 낭독해 지영헌 열사의 애국정신과 4·19 혁명의 위대한 가치를 되짚고, 민주주의의 위기가 찾아올 때마다 부활했던 4·19 정신을 다시 한번 되새기며 선배의 뜻을 기리자"고 강조했다.

한편, 지영헌 열사는 1940년 4월 10일 단양군 단성면 상방리 233번지에서 지봉구(아버지)·최옥녀(어머니) 사이에서 1남 2녀의 외아들로 출생했다.

그는 고향인 단양에서 단양초등학교(41회)·단양중학교(9회)·단양공업고등학교(5회)를 마치고 1959년 중앙대학교 법정대학 신문학과 입학했다.

민주운동이 일어났던 1960년 4·19 혁명 당시 지영헌 열사는 오전 10시 중앙대생 3000여명과 함께 애국가를 부르며 교문을 나서 거리로 뛰쳐나왔다. 경찰 저지선을 뚫고 흑석동 명수대 고갯길과 한강 인도교를 건너 서울역에 집결한 지영헌 열사와 중앙대생 시위대는 을지로 입구에 있는 구 내무부(3·15 부정선거 지휘본부)로 향했다.

수천 명의 저지 경찰대와 몸싸움을 벌이며 오후 5시쯤 내무부 경찰 앞까지 진출해 연좌데모를 벌이던 시위대에게 발포명령이 내려졌다.

경찰의 무차별 총격에도 굴하지 않고 동료학생들과 스크램을 짜고 항쟁하던 지영헌 열사는 두부 관통상을 입고 현장에서 사망하게 됐으며 인근 백병원으로 이송된 이틀 뒤인 4월 22일 신원이 확인됐다. 지영헌 열사는 꽃다운 나이 만 20세에 핏빛 외침 속에서 4월의 늦은 벚꽃잎과 함께 그렇게 스러졌다. 열사는 현재 서울시 성북구 수유리에 있는 4·19 국립묘역 83호에 안식하고 계시다.

단양=이상복 기자 cho2225@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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