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그레구아르와 책방 할아버지'

▲ 이서연 명예기자
▲ 이서연 명예기자

전체 지원자의 80%가 붙는다는 바칼로레아(프랑스 대입시험)에 떨어진 18살 국어 빵점 청년 '그레구아르'는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수레국화 요양원에 취직한다. 그곳에서 35년 간 책방을 운영하다가 파킨슨병과 녹내장에 걸려 더 이상 책을 읽을 수 없는 노인 '피키에'를 만나게 된다. 고졸이었던 그에게는 최저임금보다 적은 보수를 주는 요양원의 주방보조일 정도밖에 주어지지 않았다. 요양원의 방에 식사를 배달하는 노동 시간을 한 시간 정도라도 줄여보려는 속내를 갖고 있던 그레구아르는 피키에의 책을 읽어달라는 부탁에 응하게 된다.

그레구아르에게 책은 '학교에서 얻은 트라우마'를 재현하는 불쾌한 존재일 뿐이지만, 3000여 권의 책을 가지고 요양원에 입주한 피키에에게는 책은 곧 인생의 전부라 생각할 정도로 소중한 존재이다.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을 낭독한 뒤 그레구아르는 "타인의 삶을 그렇게 체화해 볼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라고 말했고 피키에의 "책은 우리를 타자에게 인도하는 길이다"라는 말이 정말 실현되었다.

요양원 노인들에게 책을 낭독해주면서, 상급자의 직장 내 괴롭힘과 힘겨운 노동에 시달리던 그레구아르의 삶에도 변화가 찾아온다. 그의 '낭독회'는 피키에 뿐만 아니라 옆방 할머니, 요양원 전체로까지 확대돼 시들어있던 요양원에 생기와 삶의 활력을 가져왔다. 요양원 환자들은 주치의에게 항우울제 대신 그의 책 낭독을 들으라는 처방을 받기도 했다.

그 후 죽음을 앞둔 피키에는 그레구아르에게 자신을 대신해 200km 밖 수도원까지 도보순례를 해달라고 부탁한다. 순례를 마치고 돌아온 그레구아르는 그 사이 세상을 뜬 피키에를 책의 세계로 돌려보내는 장면이 나온다. '책 읽기'는 피키에에 대한 애도이자 장례 행위가 되었던 것이다.

노인요양원에 대해서 다룬 이 책을 읽고 나이듦과 죽음에 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소위 선진화된 이 사회에서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존재가 되었을 때 우리에게 예약된 운명에 충격을 받았다"라는 구절이 인상깊었다. 자신의 가족들과 속해있던 공동체에서 떨어져 요양원에서 홀로 쓸쓸하게 삶을 마감하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그리고 노인들의 옛사랑에 대한 추억과 요양원 밀회 장면을 보면서 요양원 안의 건조하고 무료했던 일상이 밝아진 것도 인상 깊었다. 잘 찾아오지 않는 가족들보다, 책을 읽어주며 노인들의 곁을 지키고 요양원을 변화시킨 그레구아르의 행동이 부모자식간이 아니더라도 진정한 효(孝)이자 가족애가 아닐까 생각했다. 현대사회 속 문제들을 낭독과 책을 통해 풀어내며 혐오와 차별, 소외된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이 소설을 추천하고 싶다.

이서연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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