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수 공주대학교 교수

나는 1996년 3월 1일자로 공주대에 부임한 이래, 지금까지 역사책을 손에서 내려놓은 적이 없다. 1995년도 일본에 갔다가 일본인들이 ‘이순신연구회’를 만들어 공부하는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두렵고 부끄러운 마음에서 이순신 공부를 시작한 게 역사 읽기의 첫출발이었다. 그것을 시작으로 조선 시대와 근현대사를 공부하면서 여러 곳에서 왜곡과 조작된 역사를 발견하고 치를 떨어야만 했다.

아직도 넘어야 할 공부의 산이 많이 남았지만 죽는 날까지 열정적으로 역사 공부에 매진하며 진실을 기록하고 책 출간을 통해 우리 사회의 가짜와 위선에 맞서나갈 생각이다. 그것만이 30년 동안 대학교수로 편안하게 밥 먹고 살게 해준 자랑스런 대한민국과 국민을 위한 보잘것 없는 지식인의 마지막 충정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그것이 필연인지, 우연인지 고민하게 만드는 사건들이 비일비재하다. 내게는 10월 26일과 3월 26일도 그런 날이다. 10월 26일 날 권총 저격을 받아 숨진 인물은 박정희와 이토 히로부미다.

박정희는 1979년 10월 26일 궁정동 안가에서 충견(忠犬) 김재규에 의해 유명을 달리했고, 이토 히로부미는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역에서 독립투사 안중근에게 죽음을 당했다. 또 1910년 3월 26일 안중근은 뤼순(旅順)감옥에서 순국했고, 2010년 3월 26일은 서해를 지키던 46명의 해군 용사들이 북괴군의 어뢰 공격으로 산화했다. 1년 중 이날 만큼은 온종일 내 가슴이 시리다.

요즘 이 단순명료한 팩트를 놓고 고약한 말들이 넘쳐난다. ‘김재규는 민주투사다!’, ‘천안함 침몰은 북한 소행으로 볼 수 없다!’, ‘천안함 10주기 행사장에서 대통령에게 다가가 천안함 소행이 누구 짓이냐?고 물었던 윤청자 할머니를 형사 고발해야 한다!’ 어쩌다가 우리가 이렇게까지 저질 수준이 되었는지 이해할 수 없다. 또다시 전쟁이 터지고 혹독하게 당해야만 제정신을 차릴 것인가! 나는 그런 인간들을 괴물이라고 정의한다.

이 뿐만이 아니다. 총선을 며칠 앞두고 하위 70% 사람들에게 가구당 100만원씩을 뿌리겠다고 선언한 현 정권도 제정신이 아니다. 양적 완화(금전 살포)는 총선 뒤로 미루고 그때 가서 신중하게 발표하는 게 염치(廉恥)있는 정권이다. 현 정권은 그런 염치조차 없다. ‘하위 70%’라는 개념도 이번에 처음 듣는 개념이다. 게다가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청춘을 바쳤다고 나부대는 인간들이 하는 짓이라곤 지자체장 선거에 대한 불법개입 의혹, 전체주의적 발상에서 비롯된 나쁜 정책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내가 그들을 종북 주사파, 가짜 민주투사, 위선적 지식인이라고 경멸하는 것이다.

나는 그런 인간들에게 태종 이방원과 허조의 말씀을 경구(警句)로 들려주고 싶다. ‘저 주둥이는 고깃덩어리다!(彼口亦肉也)’ 이는 조선의 3대 임금인 태종(이방원)이 왕자의 난을 통해 권력을 잡은 후, 정도전 편에 서서 자신을 음해했던 변중량을 죽이면서 했던 말이다. 또 한 분은 태종이 발탁하고 세종 때 좌의정을 역임한 허조가 임종을 앞두고 남긴 가슴 뭉클한 말이다.

‘나는 국가 일을 내 일처럼, 나랏돈(혈세)을 내 돈처럼 소중하게 다뤘다. 홀연히 뒤돌아보아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

이 땅의 고깃덩어리들은 코로나 19와 함께 사라지고 허조와 같은 공직자가 나오길 기대한다.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