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석준 ETRI 광통신부품연구실 연구원
▲ 윤석준 ETRI 광통신부품연구실 연구원

윤석준 ETRI 광통신부품연구실 연구원

어린 시절 유명과학자의 이야기를 접하고 위인전을 읽으며 과학자로서 꿈을 키운 기억이 난다.

영화나 책에서 위인들의 화려한 업적이나 멋진 결과물은 보여주었지만 결과를 얻기까지의 과정이나 에피소드를 제대로 들려준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들의 고고한 업적과 성과만이 머릿속에 각인된 채 살아온 셈이다.

대학원에 진학해 공학도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도 항상 되뇌이는 질문이 있다.

과연 연구란 무엇일까? 매체에 익숙했던 필자는 학위과정을 시작할 당시 연구란 세상을 놀라게 할 만한 아이디어를 제안한 후 실험을 통해 이를 구현하고 증명해내는 일인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제안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마저도 상상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처음 연구원에 입사할 당시에도 연구 시스템과 인프라가 잘 갖춰진 연구원에서는 다르지 않을까 내심 기대를 품었던 것 같다.

과연 실험실에는 국내에서 보기 드문 장비들이 갖추어져 있을 뿐 아니라 필요한 연구재료나 기자재는 마음만 먹으면 구매도 가능한 환경이었다.

하지만 이같이 좋은 장비를 가지고 연구를 수행하는 와중에도 매번 문제 상황이 발생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연구의 개념에 대한 필자의 인식이 바뀌는 계기가 있었는데 지난해 여름 여느 때와 다름없이 광 송신기 모듈의 특성을 측정하는 와중에 예기치 못한 현상을 관측했다.

모듈의 완성도 측면에서는 억제되어야 할 소위 불청객과 같은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이를 실패작으로 간주하고 넘어갈 수 있었지만 필자는 선배 연구원의 조언으로 문제의 원인이 되는 현상을 면밀히 관찰하고 데이터를 분석했다.

결국 이 현상을 들여다보기 시작하면서 또 하나의 연구 흐름이 만들어진 셈이었다.

마침내 해당 현상을 역이용해 레이저의 변조 대역폭을 획기적으로 증가시킬 수 있는 패키징 구조를 제안할 수 있었다.

제안구조를 구체화해 특허를 출원했을 뿐 아니라 실험결과를 논문으로 발표해 세상에 빛을 보게 했다.

그야말로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변독위약(變毒爲藥)의 순간이었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자세히 들여다보기를 주저하고 눈앞의 결과를 얻는 것에만 집착해 현상을 무시한 채 넘어갔더라면 이 같은 결과를 만들 수 있었을까?

최근에 와서는 좋은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것보다 어쩌면 눈앞의 문제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해결하는 능력이 중요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한다.

필자는 ETRI 광통신부품연구실에서 초고속 광 송·수신 엔진을 개발하는 과제에 참여하고 있다.

지난 1년 6개월간 선배 연구원들과 과제를 수행하며 크고 작은 문제에 봉착했고 눈앞이 깜깜할 정도로 암울한 순간도 있었다.

동료들의 각고의 노력 끝에 과제 시작 2년 만에 괄목할 만한 결과를 낼 수 있었다.

최근 뉴스를 통해 필자가 참여한 과제의 성과가 홍보되는 기쁨을 맛보기도 했다.

그간의 과정을 잘 살펴보면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빛을 발하는 순간도 있었지만 위기의 순간 문제를 해결한 음지의 고수들을 비롯해 젖은 장작에 불을 피우고 마른 흙에서 물을 얻으려는 듯한 동료 연구원의 노고가 있었기에 괄목할 만한 결과를 이루어 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연구원에서 필요로 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를 고민하는 초보 연구자인 필자는 요즘 어린 시절 과학의 날에 그린 포스터 속 흰 가운을 입고 비커를 든 과학자보다는 위기를 기회로 바꾸고 당초 목적과는 상반되는 문제 속에서도 가치 있는 결과를 도출할 수 있는 엔지니어가 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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