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종태 대전 서구청장

1997년 IMF 외환위기는 국치(國恥)였다. 국가와 국민 모두 커다란 희생과 고통을 겪었다. 위기 극복에는 국민의 자발적인 참여가 큰 힘이 됐다.

3년 만인 2000년 12월 4일,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외환 위기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선언했다. 전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빠른 국난 극복이었다.

당시 이를 가능케 했던 건 뼈를 깎는 구조조정과 긴축정책이었지만, 온 국민의 구국(救國) 열기도 빼놓을 수 없다. 상징적인 장면은 '금 모으기 운동'이었다.

집에 있던 금을 팔아 부채를 갚자는 호소에 온 국민이 나섰다. 아기 돌 반지와 결혼 예물을 내놨다. 무려 227t의 금이 모였고, 돈으로 환산하면 22억 달러에 달한다. 나라를 살리겠다는 일념으로 장롱 속 금붙이를 들고나온 시민의 행렬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이처럼 한국인 핏속에는 국가적 위기가 닥칠 때마다 힘과 지혜를 모으는 특유의 DNA가 흐른다. 오죽했으면 '한국인의 취미는 국난 극복'이라는 말까지 생겼겠는가.

최근 코로나19 감염으로 국민의 고통이 커지고 있다. 특히, 감염증 예방에 필수인 마스크의 폭발적인 수요 증가로 한때 극심한 품귀현상이 빚어졌다.

정부가 긴급히 마스크 보급 조절에 나서 요일별로 판매하는 마스크 5부제를 시행 중이다. 물량이 늘고 마스크 5부제가 정착하면서 마스크 문제는 점차 해소되고 있는 상황이다.

대전 서구에서는 지난 11일부터 서구 마을넷과 관저공동체연합 공동으로 면 마스크를 직접 제작해 보건 마스크와 교환하는 '착한 마스크 양보하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 면 마스크와 보건 마스크를 1대 1 자율로 교환하는 캠페인이다.

면 마스크 사용 효과에 다소 불안감을 표시하는 시민도 있지만, 면 마스크를 착용하는 대신 보건 마스크를 양보하는 시민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

어떤 분은 망설임 없이 보건 마스크 서너 개를 면 마스크 1개와 교환하기도 하고, 보관 중인 보건 마스크를 기증하는 사례도 나타난다. 지금까지 1만 5000매 가량의 면 마스크를 제작해 보급했다. 시민이 교환하거나 기증한 보건 마스크를 모아 노약자와 소외계층 등 꼭 필요한 분들께 전달해 주고 있다.

서구 관내 23개 동에서는 마을활동가, 자원봉사협의회, 주민자치회 등을 중심으로 '면 마스크 쓰기 캠페인'도 동시에 펼치고 있다. 이런 자발적 시민운동이 확산하면서 무조건 보건용 일회용 마스크부터 확보하고자 했던 시민들의 행동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아울러 서구는 코로나19 여파에 따른 경제 위기 극복에도 팔을 걷었다. 지역경제 살리기의 일환으로 화훼농가의 꽃 소비 촉진을 위한 '향기 가득 화(花)이트데이' 행사를 지난 13일 서구청 현관 앞에서 개최했다. 구내식당 닫기, 외식 한 번 더하기, 착한 임대료 행복동행 릴레이 등 시민과 함께 각종 캠페인도 펼치고 있다.

고통 분담을 위한 급여 반납 운동도 열기가 뜨겁다. 얼마 전 저를 비롯한 대전지역 5개 자치구 구청장이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역 사회를 위해 급여 일부를 기탁하는 고통 분담에 나섰다. 대통령과 정부 부처 장·차관, 허태정 대전시장의 급여 반납 등 코로나19 위기 극복 기부 릴레이에 선한 자극을 받았기 때문이다. 각 자치구 공무원 노조에서도 자율적 모금을 통한 기부를 추진하는 등 지역 공직사회 전반에 걸쳐 기부 움직임이 확산하고 있다.

위기 때마다 결집력을 통해 국난을 극복한 한국인 특유의 DNA가 이번에도 살아 숨 쉰다. 전 세계가 코로나19로 고통받고 공포에 휩싸여 있지만, 대한민국은 코로나19에 정면으로 맞서 조금씩 승리를 거두는 중이다.

이제 바이러스 위협 못지않게 경제난이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 힘을 합치면 이 역시 이기지 못할 대상이 아니다.

신속 정확한 코로나19 대처로 전 세계를 놀라게 한 우리는 경제난 극복에서도 또 한 번 세계를 놀라게 할 것이라고 믿는다. 코리아는 코로나보다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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