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윤석 을지대학교병원 산부인과 교수

양윤석 을지대학교병원 산부인과 교수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COVID-19)가 높은 치사율을 보이면서 전 인류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있다.

모든 생명체는 세포로 이루어져 있고, 유전자의 자기복제를 통해 자손에게 전달한다. 하지만 바이러스는 특이한 존재다. 그냥 핵산 쪼가리에 얇은 단백질이 감싸고 있어 스스로 복제할 능력이 없다. 숙주의 DNA에 올라타야 자기복제를 해댄다. 자기 복제를 위해 숙주를 감염시키는 것이 바이러스의 유일한 존재 이유다.

바이러스와 같은 유기체만이 자기복제를 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사고나 행동, 생존을 위해 터득한 지혜 등도 끊임없이 자기복제를 하고 전파한다.

'이기적 유전자'를 저술한 리처드 도킨스는 이를 '밈(meme)'이라고 총칭했다. 바이러스가 숙주에 기생하면서 자신을 복제하는 것과 같이, 밈도 인간의 뇌를 번식처로 삼아 자기 복제를 한다. 이런 복제된 밈들 간의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은 것이 우리의 문화라는 것이다.

최근 페이스북, 트위터와 같은 소셜 미디어가 확산 되면서 거의 무의식적으로 한 사람의 생각이 순식간에 퍼지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최근 n번방 사건과 같이 인간의 욕구인 성, 분노, 폭력, 공포, 탐욕을 충족시켜주는 충동적 밈들은 코로나바이러스처럼 엄청난 감염력이 있다.

이런 밈들이 뇌를 독점하게 되면 다른 '경쟁자'인 선한 밈은 희생 되면서 평생 나쁜 밈의 조종을 받게 된다. 이것을 '밈의 감염'이라고 한다. 20세기 미국의 대표적인 시인인 월리스 스티븐스는 "생각은 전염병이다. 어떤 생각들은 경우에 따라 유행병이 된다."고 말할 정도였다.

최민식의 영화 '올드보이'를 보면 그가 극중 인물에 얼마나 몰입했는지를 알 수 있다. 이런 영화 기법을 '메소드 연기'라고 하는데, 배우가 극중 배역에 몰입해 그 인물 자체가 되어 연기하는 방법을 뜻한다. 이 때문에 촬영이 끝난 후에도 극중 인물처럼 행동하는 후유증을 앓기도 한다. 타인의 생각에 함몰되는 것이 얼마나 무섭고 힘든 일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긴 촬영 기간 탓에 배우들은 촬영이 끝난 후 자신을 되찾기 위한 시간을 꼭 갖는다고 한다. 휴식을 취하거나 심지어 심리치료를 받기도 한다. 그래서 명배우인 것이다.

배우가 아닌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나만의 생각이라고는 하지만 결국 남의 생각, 강력한 전염력이 있는 밈들에 의해 예속된 부화뇌동의 삶을 사는 경우가 있다. 일상의 삶을 사는 우리도 쓸데없는 밈의 공격을 쓸어내는 습관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타인의 생각에 휩쓸리지 않은 '명품 인생'을 살 수 있다.

인간은 코로나바이러스의 숙주 역할을 하지 않기 위해 사회적 거리를 두고, 개인 위생을 철저히 하기 위해 매일 손을 씻는다. 우리의 뇌가 나쁜 밈의 숙주가 되지 않는 방법도 마찬가지다. 충동적 밈이 보이면 거리를 두고, 매일 자신을 씻어내 새롭게 만들어야 한다.

은나라 시조인 탕왕은 자신의 세수대에 써 넣은 "일일신우일신(日日新又日新)"이라는 구절을 보면서 세수를 했다고 한다. 나날이 새로워 지지 않으면 자신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사실을 탕왕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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