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보하 청주시 흥덕구 민원지적과 주무관

영화 '컨테이젼(contagion)'은 'Day 2'라는 자막으로 시작한다. 회사 출장으로 홍콩을 다녀온 베스는 기침·발열·발작 증세를 보이다 병원에서 사망한다. 사망 원인은 불분명했고, 부검 결과 이제껏 본 적 없는 새로운 징후가 그녀의 뇌에서 발견된다. 비슷한 시각, 세계 각국에서 홍콩을 방문했던 사람들이 베스와 같은 증상으로 사망한다. 비슷한 증상을 보이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자 WHO와 미국 질병통제본부가 주목하기 시작한다. 감염자 수는 빠른 속도로 증가했고, 많은 사람이 사망한다. 분석 결과 사스(SARS)와 유사한 이 바이러스는 박쥐와 돼지 병균의 결합이자 이제껏 인간이 경험하지 못한 신종 바이러스였다.

병원은 감당할 수 없는 수의 환자와 시체로 마비되고, 감염자가 발생한 도시를 봉쇄되는 데까지 이른다. 정부의 힘이 미처 닿지 못하는 상황에서 시민들은 사재기와 약탈 행위를 일삼고, 범죄조직이 성행한다. 치료제나 백신에 관한 가짜 정보들이 언론과 SNS를 통해 무분별하게 퍼져나가고, 이를 통해 이득을 챙기는 주식회사·제약회사들도 등장한다.

한 연구원의 희생으로 신종 바이러스에 대항하는 백신이 개발돼 배포되지만 다시 백신 분배에 관한 딜레마가 발생한다. 감염학자들은 지금까지 인류가 경험했던 바이러스들이 저장된 실험실에 신종 바이러스 균을 저장한다. 베스가 어떤 경로로 최초 감염된 것인지는 밝혀낼 수 없었지만, 이제는 마치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느껴진다.

한 트랙터가 숲속의 나무를 베고 있다. 그 트랙터에는 베스가 다니는 회사의 로고가 박혀 있다. 쓰러진 나무 위로 박쥐 떼들이 날아가 버린다. 서식지를 잃은 박쥐는 돼지 축사로 들어가고, 박쥐가 먹다 떨어뜨린 과육을 돼지가 받아먹는다. 그 돼지는 도축돼 레스토랑으로 유통된다. 그 돼지를 맨손으로 만지며 요리하던 주방장이 손님을 맞이한다. 손을 씻지 않은 채로 베스와 악수를 한다. 그렇게 'Day 1'이라는 자막이 떠오르며 영화는 끝이 난다.

마치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바이러스의 근원이 박쥐가 아닌 인간이었다니. 거대 기업들의 무분별한 벌목과 산림 훼손으로 서식지를 잃은 야생동물들이 민가로 내려와 인간과의 접촉이 쉬워졌다. 그 결과 인간이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바이러스 질병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결국 이 신종 바이러스는 인간으로부터 야기된 것이다.

이 영화에는 오락적 요소가 없고, 상황 전개 방식이 정적이기 때문에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몇 달 전에만 봤어도 조금은 지루하게 느꼈을 이 영화가 코로나19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 현시점에서는 다르게 다가온다. 지난 2011년 개봉 작품인데도 2020년 현 상황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다. 사실,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바이러스 관련된 영화가 없을까 찾다가 보게 된 영화가 '컨테이젼'이다. 아니나 다를까 요즘 바이러스 영화가 역주행 중이다. '컨테이젼'이 온라인 다시 보기 영화 순위 3위에 올랐다. 개봉 당시에는 극장 관객 22만여 명에 그친 흥행 실패작이었지만 8년이 흐른 지금 재조명을 받고 있다.

영화 '컨테이젼'은 바이러스의 창궐로 인해 파생되는 다양한 문제 상황들을 제시한다. 무분별한 정보의 확산과 이를 이용하려는 집단의 등장, 취약계층의 정보격차 문제, 백신 분배에 관한 딜레마와 이에 대한 선진국과 후진국의 입장 차이, 아포칼립스 상황 속 인간의 잔혹성과 무질서함, 무분별한 환경파괴 등 전 세계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자가 4만 명, 사망자가 900명이 넘어가는 시점에서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과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준다.

하루빨리 코로나19 사태가 해결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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