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희봉 명예기자
▲ 문희봉 명예기자

내가 대전에 터전을 잡은 것이 70년대 초였다. 그때 아들은 네 살, 딸은 여섯 살이었다. 세상 물정 모르고 열심히 뛰어놀 시기였다. 딸은 이듬해 1학년 청강생으로 들어갔고, 아들은 혼자서도 잘 놀았다.

아들은 발이 넓었다. 숫기도 좋았다. 옆집에 가서 음식도 얻어먹고, 그 집 아이와도 잘 놀았다. 이집 저집 기웃거리지 않는 곳이 없었다. 형들 따라 이곳저곳 열심히 돌아다녔다. 금방 찍어낸 지폐같이 구김이 없는 얼굴을 하고서.

네 살 때 옆집 총각이 찍어준 사진은 정말 명품이다. 한쪽 바지는 걷어 올리고, 혀를 샐쭉 내밀며 웃고 있는 사진이 그 시절을 고스란히 말해주고 있다. 귀여움과 듬직함이 얼굴 전체에 골고루 퍼져 있다. 졸랑졸랑 따라다니며 "아빠, 이게 뭐야. 이건 또 뭐야?" 했던 아이다. 책도 읽어달라고 했다. 놀아달라고 했다. 그럴 때마다 책을 읽어주고, 놀아주면서 즐겁게 지냈다. 그런 아이가 언젠가 자기 짝이라고 데려온 키가 훌쩍 크고 예쁘게 생긴 서구풍의 아가씨와 결혼을 했다.

손녀 '돌잔치'를 하던 날 인사로 한 말이 나를 감동케 했다. "제가 자식을 낳아 키워보니 부모님의 마음을 알 수 있을 것만 같다."고.

손녀가 돌 무대에서 선택한 것은 연필이었다.

"그래 어떤 일을 하든 간에 지식과 지혜의 습득은 기본 중의 기본이란다. 지상에서 가장 훌륭한 양식은 책이다. 시간이 날 때마다 손에서 책을 놓지 않게 가르쳐라. 연필을 가까이 하면서 열심히 배울 수 있도록 가르쳐라. '성공 원칙'이 아니라 '실패하지 않는 원칙'을 수립해서 실천하도록 하면 좋을 것이다. 세상에 '연습'만큼 위대한 재능은 없다 하지 않니? 아는 것이 힘이란다. 아는 것을 실천하는 것은 더 큰 힘이다. 아프지 말고 무럭무럭 자랄 수 있도록 세심한 배려가 필요할 것이다."

나와 네 엄마가 너에게 했던 것처럼. 그래 아들아, 부모의 뜻 저버리지 않으면서 네 자식도 잘 키우는 그런 부모가 되어다오.

문희봉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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