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은수 장대B구역 재개발정비사업조합장

조합의 전문성부족, 자금조달능력 부재 등 앞서 언급한 재개발·재건축의 구조적이고 태생적인 문제점의 또 다른 대안으로 정부는 2016년 3월에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을 개정해 금융기관인 신탁사를 정비사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신탁방식은 '사업대행자'방식과 '사업시행자'방식 두 가지로 나뉜다.

사업대행자방식은 기존의 조합이 사업주체로서 신탁사를 사업대행자로 지정해 함께 사업을 추진하는 방식이며, 사업시행자방식은 조합을 설립할 필요없이 처음부터 신탁사가 사업주체로서 주민의 동의를 받아 사업을 추진하는 방식이다.

현재 전국에서 약 70개 구역 이상이 이러한 신탁방식을 도입해 재개발·재건축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아직까지는 사업대행자방식으로 추진하는 구역이 많다고 한다.

그렇다면 신탁방식은 어떻게 기존 조합방식의 대안으로 떠오르게 되었을까?

앞서 말했듯 조합방식의 가장 큰 문제점 중에 하나가 조합은 자금조달 능력이 없다는 점이다.

하지만 신탁방식은 조합이 금융기관인 신탁사의 자금력을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정비사업에 있어서 초기사업비는 조합이 사업주체로서 중심을 잡아주는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기존에는 시공사나 용역사 등 협력업체에 의지할 수 밖에 없고, 협력업체가 자금대여를 중단하면 사업 또한 중단될 수 밖에 없었다. 이에 반해 신탁사가 참여하게 되면 조합운영비나 사업비를 필요에 따라 적시에 조달 받을 수 있다. 또한 계약된 협력업체들도 용역비를 시기에 맞춰 바로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용역 업무에 집중할 수 있다. 이는 사업이 신속하게 추진될 수 있도록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준다. 이러한 이유로 신탁사의 자금력은 사업이 장기간동안 정상적으로 추진될 수 있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다.

또한 신탁사의 투명한 사업관리를 통해 조합원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

신탁사는 금융위원회의 인가를 받고 금융감독원의 관리·감독을 받는 금융기관이다.

금융회사인 신탁사가 시공사대신 사업비를 대여하고 자금을 관리하기 때문에 조합이 소유자들에게 신뢰를 얻을 수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신속하고 원활하게 사업을 추진할 수 있다.

신탁방식은 특히 사업비를 절감해 사업성을 개선할 수 있다.

신탁방식 정비사업은 신탁사가 기존에 오랫동안 개발사업에서 해왔던 개발신탁방식을 재개발재건축에 적용한 방식으로서 신탁사가 시공사대신 사업비 조달 책임 등 각종 리스크를 지게 된다.

신탁사가 분양과 상관없이 공정율에 따라 시공사에게 현금으로 공사비를 지급하는 대신 시공사는 단순공사만 하고 공사비를 낮추어 사업성을 높이는 구조이다.

재개발·재건축사업에서는 공사비가 보통 수천억원이 되기 때문에 공사비 몇 프로만 절감해도 수백억원을 아낄 수 있다. 조합원 입장에서는 신탁사에 신탁보수를 지급하더라도 그 이상의 이익이 되는 구조이다.

마지막으로 신탁사의 전문인력을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신탁사는 전문성을 바탕으로 조합을 도와 지자체와의 인허가 협의나 조합운영, 협력업체 관리 등의 지원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시공사가 특화설계, 실시설계 변경, 건축자재비 인상 등의 이유로 공사비 인상을 요구하더라도 신탁사에 있는 기술전문가들의 검증을 받아 공사비 인상을 줄일 수 있다. 이렇게 기존 조합의 부족했던 전문성을 신탁사가 보완할 수 있기 때문에 보다 신속하고 정확하게 사업이 추진될 확률이 높다.

필자가 조합장을 맡고 있는 대전 장대B구역 또한 신탁방식으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십여년간 추진위원회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정체되어 있던 우리 구역은 신탁방식을 선택하고 나서 토지등소유자님들의 적극적인 지지로 조합을 설립였으며, 작년 12월 총회를 개최해 최상의 마감기준에도 불구하고 신탁사 기성불 조건으로 저렴한 공사비를 제안한 GS건설이 시공사로 선정되었다.

그 동안 상권침체와 슬럼화로 미래가 보이지 않던 우리 장대B구역은 이제 몇 년 후에는 약 3000세대의 아파트와 약 1만 6000여평의 판매시설 등으로 이루어진 49층 규모의 고급 주상복합 랜드마크 단지로 거듭나게 될 희망으로 부풀어 있다.

시장에서는 신탁방식으로 추진하는 구역이 갈수록 늘어나게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신탁사들의 자금조달능력과 공신력에 따라 우열과 옥석 또한 가려지게 될 것이다.

혼란스러운 세상 속에서도 한 가지 분명한 진리는 세상은 끊임없이 변하고 있으며, 기존의 낡은 습관을 고수하기만 하면 시장에서 도태될 뿐이다.

조합 또한 새로운 변화의 바람 앞에서 구시대의 유물로 도태될지, 혁신을 통해 진일보(進一步)할지 이제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었다.

이젠 재건축, 재개발도 복마전(伏魔殿)이라는 동굴에서 벗어나 투명하게 변화해야 하는 시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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