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천재가 완성한 ‘우리의 소리’… 세계서 울려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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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천재가 완성한 ‘우리의 소리’… 세계서 울려퍼진다
  • 충청투데이
  • 승인 2020년 03월 11일 17시 10분
  • 지면게재일 2020년 03월 12일 목요일
  •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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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永同의 난계 박연 선생
이론가이면서 편경 12매 제작
아악 율관 정리·악보도 편찬
대금 연주실력도 뛰어난 수준
심천면 고당리 생가·묘소 보존
1991년 창단 난계국악단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등
세계 주요도시서 공연 선봬
매년 10월 난계국악축제 열려
▲ 난계 국악축제의 한 장면. 영동군 제공
▲ 난계국악단 공연 모습. 영동군 제공
▲ 난계국악박물관 체험. 영동군 제공
▲ 난계국악단 맞춤형 국악 강습. 영동군 제공

충북 영동군 심천면 고당리에는 세계에서 제일 큰 북이 있다.

이름하여 '천고'天鼓.

북의 지름이 5.5미터, 무게 7톤인 천고를 만들기 위해 소 40마리의 가죽이 들어갔고 15톤 트럭 4대 분량의 소나무 원목이 사용되었다.

영동군이 2억원의 군비를 들여 10년전 제작한 것으로 많은 관광객, 특히 국악인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10월에 열리는 '난계 국악축제'등 큰 행사 때 울리는 이 천고의 북 소리는 천상의 목소리처럼 장엄하고 신비감마저 느끼게 한다.

'천고'란 무엇인가? 인도 전설에 의하면 33신들이 사는 수미산 정상에 도리천이라는 신들의 도시가 있다. 그곳에는 선법당이 있고 그 법당에 놓여 있는 북을 '천고'라고 하는데 이 북은 치지 않아도 때 맞춰 소리를 냈다는 것이다.

이 천고를 재현한 것인가.

특히 이곳은 난계(蘭溪) 박연(朴堧)선생의 생가와 묘소, 사당이 있는 곳이어서 의미를 더 한다.

충북 영동 출신의 난계 박연은 1378년에 태어나 1458년 세상을 떠날 때 까지 의영교 부사, 집현전 교리, 예문관 대제학 등 벼슬에 올랐으나 우리 민족의 국악, 특히 조선의 궁중 음악인 아악(雅樂)을 정비하고 완성한 인물로 숭앙 받고 있다.

그래서 박연을 왕산악(고구려), 우륵(신라)과 더불어 3대 '악성'(樂聖)으로 일컫는다.

그는 우리 음악에 대한 해박한 이론가였으며 직접 자신이 1427년 편경(아악기의 하나인데 두 층의 걸이가 있는 틀에 한 층마다 두께에 따라 서로 다른 여덟 개씩의 경쇠를 매어 달고 치는 타악기-국어사전 참조) 12매를 제작 세종대왕께 올렸고, 세종이 크게 기뻐하였다.

또한 박연은 우리 아악의 율관을 정리하고 악보를 편찬하는 등 우리 민족고유의 아악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큰 업적을 남겼다. 이렇게 그가 우리 음악을 크게 발전시키는 데는 음악에 깊은 조예를 가진 세종 임금의 성원이 컸음은 물론이다.

이렇듯 이론은 물론 직접 악기를 제작하는 재능을 갖춘 박연은 대금 연주에도 뛰어나 그가 이를 연주하면 궁중에서나 대소 제례 때 감탄의 소리가 높았다고 한다.

또한 그는 천문학에도 이름을 날렸다.

그러나 그 역시 비극적 운명을 비켜 갈 수 없었다. 아들 박계우가 예상치 못한 사건에 휘말린 것이다.

박계우는 집현전에 있으면서 세조가 어린 단종을 내쫒고 왕위를 찬탈한 것에 불만, 1454년 선비들이 일으킨 단종 복위운동에 가담하였다는 죄로 사형을 당했다. 훗날 그의 충성심을 높이 기려 이초판서에 추서되었다.

아들을 잃은 박연의 슬픔은 말할 수 없었다. 조정에서는 아버지 박연도 체포하여 사형을 시키는 것이 연좌제로 되어 있는 당시 형법제도였지만 세조는 그가 세 분의 임금을 모셨던 중신이라는 정상을 참작하여 불문에 붙였다.

그러나 박연은 스스로 안치를 자청하여 유배 아닌 유배의 고초를 택했다.

안치가 끝난 후 아픔을 안고 고향에 내려와 후학들을 가르치며 살다가 1458년 8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고향 충북 영동군 심천면 고당리에는 생가와 묘소가 잘 보존되어 있고 그의 음악정신을 기리는 난계사, 난계 국악박물관 등이 후세에 까지 식지 않는 그의 국악정신을 꽃피우고 있다.

특히 난계 국악단은 1991년에 창단되어 1998년 대통령 취임식행사 연주를 비롯 2013년 호주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공연 등 세계 주요 도시에서 공연을 하여 우리 국악의 진수를 과시했고 매년 10월에 열리는 난계국악축제는 대한민국 최고의 국악 페스티벌이 되고 있다. 그렇게 난계 박연의 음악은 계속 살아 있다.

<충남복지재단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