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이찬 ETRI 홍보실 행정원

전 세계가 코로나 바이러스로 공포에 떨고 있다. 장기간 광범위하게 바이러스가 확산되면서 세계 최대 모바일 전시회인 MWC와 100년이 넘는 전통의 제네바 모터쇼도 취소됐다.

가장 불안에 떨고 있는 나라는 일본이다. 당장 그리스에서 성화 봉송이 시작되고 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있는데 IOC는 취소 결정까지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방사능 유출, 선수단 후쿠시마산 식재료 공급 등으로 논란이 많았는데 질병 문제까지 겹친 최악의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올림픽이 무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모양새다. 집단 감염이 이뤄진 크루즈선을 통계에서 분리하고 코로나 진단을 3000건밖에 진행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대내외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왜 이리 올림픽을 개최하기 위해 혈안이 돼있을까?

경제 활성화를 위해서라기에는 이미 올림픽 준비에 쓴 비용만 32조다.

관광 특수는 단기 효과에 그치고 길게 보면 시설 관리와 활용처 부족으로 적자 가능성이 큰데도 말이다.

정답은 스포츠 이벤트와 ICT 산업의 상관관계에서 찾을 수 있다.

일본은 1964년 도쿄올림픽을 개최하면서 세계 최초로 컬러TV 방송을 송출하며 경기를 생중계했다.

덕분에 높은 기술력을 여실히 입증하고 전자제품을 대대적으로 수출하면서 경제부국으로 떠올랐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은 차세대 디스플레이 부문에서 우리나라가 대대적인 성공을 거둔 변곡점이 됐다.

어떤 제품군이 대세를 이룰지 모르는 상황에서 우리는 HD TV에 집중했지만 일본은 선택이 달랐다.

그런데 축구 대표팀의 승승장구가 이어지면서 우리나라의 HD TV 판매는 전성기를 달렸다.

반면 일본의 TV뿐 아니라 전자제품 기업들은 쇠락의 길을 걷고 만다.

중국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임에도 경기장을 Wi-Fi존으로 만들어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이후 중국 정부의 ICT 굴기가 이어지며 거대 IT 유니콘 기업들이 속속 등장했다.

일본 역시 1964년 도쿄 올림픽의 영광을 재현하고자 대대적으로 칼을 갈았다. 우리나라가 평창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하고 세계 최초 5G 상용화 타이틀을 가져갔지만 일본은 진정한 5G 주파수로 불리는 28GHz 대역까지 한 번에 기지국을 설치해 올 봄 상용화를 목표하고 있다.

이미 공영방송 NHK를 통해 2018년 12월, 세계 최초 8K 방송에 성공했다. 소니, 샤프 등 일본 기업들은 이번 달부터 8K 프리미엄 TV 일반 판매에 나섰다. 설령 코로나로 인해 올림픽에 차질이 생기더라도 일본의 기술력과 노력이 상당함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올림픽에서 초연결, 초실감 서비스를 선보이며 장기 불황을 떨치고 재도약을 하고자 하는 의도가 굳건하기 때문이다. 일반 시민의 관점에서 기술 진보는 세상을 더욱 실감나고 편리하게 즐길 수 있게 만들어 준다는 점에서 마냥 긍정적이다.

하지만 산업과 기술 패러다임은 먼저 선점하는 주체가 과실을 독점하고 거시경제 흥망성쇠가 달려 있기에 그저 지켜볼 수만은 없다.

우리가 이룬 성과에 취해 안주한다면 일본의 2002년 월드컵 시절을 따라가게 될 수도 있다. 정부기관은 장기 정책방향과 원천기술 연구 로드맵을 짜고 기업들은 생태계 확보를 위해 총력을 다해야 한다.

새 시대의 무대를 수동적으로 즐기는 관객이 되지 않고 감독 혹은 주인공으로 나설 수 있도록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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