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공섭 대전동구문화원장

현시대는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있다.

그 변화(變化)는 성장이라는 수레가 앞장서고 있으며 그 수레에 동승하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그것에 맞춰 사회의 모든 것이 짜여지고 그곳을 향해 전력 질주하고 있다.

인성과 감성이 무너져가고 있으며, 이기주의가 팽대한 세상이 됐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사람 간 신뢰가 깨진다는 것이다. 남보다 앞서야 되고, 남을 이겨야 자기가 살 수 있다는 강박관념에서 삶의 질서가 파괴되고 있다.

무한경쟁 속에서 남을 이기기 위해 앞서가는 사람의 발목을 잡는다.

상대를 비방하고, 헐뜯고, 질투하는 풍조가 난무한다. 특히 유튜브 개인방송이 사회를 이분법으로 갈라놓고 엉터리 가짜 뉴스가 세상을 병들고 비틀거리게 한다.

선거가 있는 해에는 후보자들끼리 서로 비방하고 깎아 내린다.

밟고 깔아뭉개야 자기가 당선된다고 생각한다.

서로가 격려하고 보듬고 잘한다고 칭찬하는 세상은 요원한 것일까?

추임새는 ‘상대방을 추켜 세워준다’라는 순수 우리말이다.

판소리 창(唱) 할 때 고수가 창자에게 얼씨구, 잘한다, 좋지, 그렇지, 얼 쑤, 등 추켜 주는 소리를 말한다.

고수가 하는 추임새와 관중이 하는 추임새로 나뉜다. 고수의 추임새는 판소리를 잘 하라는 의무적 추임새다. 관객의 추임새는 판소리를 하는 창자에게 보내는 응원의 추임새다.

판소리를 하는 사람이 고수의 추임새와 관객의 추임새를 듣고 더욱 흥이 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교육 열의는 세계적인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아이를 최고로 만들기 위해 유치원에 가기 전부터 교육전쟁을 시작한다.

학원이나 학습지에 아이가 볼모가 돼 어린이로서 가져야 할 순수함, 협동심, 존경심, 나눔과 베품이 사라진다.

불쌍할 정도로 감성이 메마른 기계적인 사람으로 변한다.

경쟁시대에 앞서가야 하는 강박관념 속에 엄마는 아이에게 추임새는커녕 간섭만 한다.

그러다보니 아이는 하는 일마다 자신이 없고, 자신이 하는 일은 모두 잘못된 것처럼 느낀다.

잘하고도 엄마 눈치를 보는 습관을 갖게 된다.

추임새(칭찬)를 듣지 못한 아이는 유아독존적 사고를 가진 사람으로 변해 사회의 일원이 되는 데 큰 제약을 받을 수 있다.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는 부모와 가족, 학교에서 추임새를 먹고 자란다’는 사실이다.

아이가 잘하는 것을 추임새 해주면 자녀는 자신감과 함께 긍정적인 인성을 갖게될 것이다.

추임새를 듣고 자란 아이와 추임새를 듣지 못하고 자란 아이는 많은 차이점을 보인다.

추임새를 듣고 자란 아이는 정서적으로 안정되고 생활주변의 관계가 우호적이고 협조적인 어린이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다.

추임새를 듣지 못한 아이는 개인주의적 사고와 협동심이 없고 오로지 나만 생각하는 사람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다.

어려서부터 추임새를 들어야 바르고 정의롭고 사회와 정 나누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부부 간 추임새, 가족 간 추임새, 친구 간 추임새, 직장 내 추임새 등 칭찬 바이러스가 사회 전반에 퍼지길 바란다.

그렇다면 우리를 힘들게 하는 코로나19도 맥을 못 추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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