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윤석 을지대학교병원 산부인과 교수

양윤석 을지대학교병원 산부인과 교수

‘청산리 벽계수(碧溪水)야 수이감을 자랑마라 일도창해(一到蒼海) 허면 다시 오기 어려우니 명월이 만공산 허니 쉬어간들 어떠하리.’

조선의 종친인 벽계수를 유혹하는 황진이의 시조다. 푸른 시냇물이 쉽게 흘러감도 잠깐 뿐 한번 바다로 흘러가면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것처럼 인생도 그러하니 현재 이 시간 좀 더 알차게 즐기자는 내용이다.

인생무상을 노래한 것으로 이미 400년 전에도 현재 우리가 고민하는 것과 똑같은 고민을 하면서 살았다는 증거다.

인생 성장에는 S자형 커브 법칙이 따른다. 처음 사회 진출 때 무척 힘들고 어렵겠지만 어느덧 노력의 대가가 빛을 내면서 가정과 사회에서 중추적인 위치에 서게 된다. 사실 30~40대는 누구나 다 아름답다. 황진이가 말하는 청산리 벽계수처럼 인생 최고의 수이감을 뽐내는 시절이다.

하지만 영문도 모르는 변곡점이 찾아온다. 아름다웠던 40대 이전 나의 모습은 찾아볼 길이 없다.

황진이가 말하는 일도창해 시기다. 당시 평균 수명이 45세를 넘지 못했으니 바다로 흘러가는 인생은 보지 못했을 것이다.

21세기 우리는 일도창해 해서야 50세가 넘어서야 본격적으로 자신의 인생을 펼치는 100세 시대에 살고 있다.

신은 인간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모든 사람에게 잠시 쉬어가는 변곡점을 주었다. 우리의 몸이 보내는 신호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갱년기' 증상이다. 갑자기 잠도 잘 안 오고 얼굴은 화끈거리며, 부아가 치밀어 오르고 복부 비만, 고지혈증까지 생긴다.

변곡점에서 역량을 발휘하는 훌륭한 CEO처럼 우리는 갱년기에 몸이 주는 신호를 잘 파악해 100세까지의 삶을 영유할 준비 혹은 새로운 변신인 S자형 커브를 만들어 내야 한다. 여기서 한 사람의 향후 50년의 운명이 결정된다.

갱년기란 사람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45~55세 사이에 4~5년간 육체적·정신적·사회적으로 힘든 시기를 말한다.

물론 호르몬 치료 등을 받으면 바로 호전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새로운 인생을 찾으라는 신호이자 100세까지 유지해나갈 평생의 식습관, 운동, 새로운 철학을 찾아내라는 명령이다.

어찌 보면 화려했던 30~40대 몸의 욕구, 마음가짐에서 탈출해야 하니 몸도 마음도 고통스러운 것은 당연하다.

이런 힘든 시기를 잘 보내고 나면 어느덧 질병들도 사라지고 새로운 인생의 S자형 곡선을 멋지게 그리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갱년기 이후 새로운 S자형 곡선의 삶에서는 인류애가 중심이 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돈을 벌기 위함보다는 보람으로 일하게 되고 나로 인해 더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지길 바라는 마음이 생긴다. 또 돈을 위해 일 할 때보다 행복하고 피로도 덜 하며, 건강까지 얻게 될 것이다.

갱년기부터 터득해 인생 후반부를 장식해도 늦지 않다. 아니, 훌륭하다.

시냇물이 바닷물이 되는 변곡점, 그리고 삶의 본질이 변하는 갱년기, 이는 신이 인간에게 보내 준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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