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호 인텍플러스 부사장

우리나라 증권시장의 역사의 시작은 1896년 일본인에 의해 세워진 미두취인소(米豆取引所) 이다. 미두취인소는 쌀과 콩에 대한 선물 거래 시장 이었고, 사실상은 일본의 쌀 수탈을 위한 통로 역할 이었다. 1920년 경성주식현물시장, 1932년 조선취인소가 개설되어 근대적 모습의 유가증권 거래시장이 개설되었고, 소수의 한국기업과 도쿄 및 오사카 거래소의 일본기업이 상장되어 거래가 이루어졌다. 일제시대에는 주식거래가 활발하지도 않았고 거래목적 또한 식민지 수탈의 도구 였으며, 단기성 투기 시장의 성격을 띄었다.

해방이후 1960년까지의 증권시장은 주식거래는 미미하고 국채만 주로 거래되는 시장이었다. 해방과 전후 재건이라는 시대적 배경으로 국채가 대량으로 발행되었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1956년 증권거래소가 처음 개설되면서 본격적인 주식거래가 시작된 시기이기도 하다.

1960년대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시작되고 경제가 고도성장기에 들어서면서 증권시장도 주식 중심 시장으로 면모 하였다. 하지만 시장은 기업의 가치가 아니라 매수세력과 매도세력간의 힘겨루기에 의해 폭등과 폭락을 반복했다. 또한, 증권 파동과 통화개혁으로 증권시장이 불안정하여, 일반대중에게 '증권투자=투기' 또는 '증권투자=패가망신'이라는 인식을 심어준 계기가 된 시기였다. 하지만 1962년 '증권거래법'이 제정되면서 투기 시장이 아닌 건전한 자본시장 육성을 위한 제도적 기틀을 마련한 시기이기도 했다.

1970년대는 경제개발에 필요한 재원 조달을 위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증시를 육성하고, 일반 국민들이 주식시장에 참여하기 시작한 시기이다. 정부의 기업공개 유도 정책에 따른 공모주 청약 붐이 일기 시작했고, 중동 건설 수주가 피크를 이루면서 건설주가 시장 최고 인기주로 각광을 받았다. 또한 정부의 자본시장 육성 정책으로 80년대 도약을 위한 발판이 된 시기였다.

1980년대는 높은 경제성장율을 바탕으로 증시 역사상 가장 긴 대세 상승기를 맞았던 시기이다. 1985년 100포인트대에 머물던 코스피 지수가 1989년 처음으로 1,000포인트에 도달하였다. 또한 국민주 보급, 우리사주조합, 공모주 활성화 등으로 개미라고 불리는 일반투자자들이 본격적으로 주식시장에 참여한 시기이다. 하지만 88올림픽 이후 경기가 과열에서 하강국면으로 전환되면서 1989년부터는 대세하락기가 시작되었으며, 당시의 주식 매매 기준은 기술적 분석 기법에 의존하던 시기이다.

1990년대는 1997년~1998년의 외환위기와 1999년 IT폭등으로 인한 환희를 경험한 시기였다. 또한 IMF 이후 외국인 투자자들이 유입되면서 주당순이익(EPS), 주가수익비율(PER)등 개별기업의 가치가 투자의 기준이 되기 시작한 시기이다.

2000년대 이후 주식시장은 급변하는 글로벌 환경속에 투자 방식도 다원화되었다. 외국인과 기관은 파생상품 단기 매매로 수익을 내려하였고, 개인들은 중소형주 테마주에 매달리기도 했다. 대선 시기에는 정치인 테마주가 황당한 광풍을 일으키기도 하고, K팝 관련주, 중국 특수의 화장품 관련 급등도 있었다. 또한 세계적인 경기 활황으로 인한 상승장도 있었다. 증시의 역사는 정치, 사회, 기술, 경제적 변화와 기업들의 흥망성쇠 안에서 10년 주기의 버블이 반복되는 환희와 절망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과거의 반복된 패턴에 대한 이해는 투자자들의 감각을 기르는 밑바탕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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