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후한(後漢) 중엽(中葉) 외척(外戚)인 양익(兩翼)은 자신의 누이동생이 8대 순제(順帝)의 황후가 된 것을 기회로 그의 동생 불의(不疑)와 함께 권력을 잡고 횡포를 부렸다. 양익은 그의 동생인 불의가 하남태수로 임명되자 사자 여덟 명을 선발해 각 고을을 순찰하도록 명했다. 그 여덟 사람 중 의기가 매우 높은 장강(張綱)은 명을 받자 “들개나 이리와 같은 양익 형제가 조정(朝廷)을 판치고 있는데, 그까짓 여우나 살쾡이 따위를 잡아서 무엇하겠는가?”라며 양익 형제의 횡포를 탄핵하는 상소문을 올렸다.

그로 인해 장강은 양익에게 미움을 사 광릉 태수로 좌천됐다. 당시 광릉군(廣陵郡)은 10년도 넘게 양주와 서주일대를 휩쓸고 다니며 도적질을 하는 장영 일당의 본거지였다. 겁이 나 그 누구도 부임하기 꺼렸다.

그러나 장강은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임지로 가는 즉시 도적 떼의 소굴로 찾아가 수괴(首魁) 장영을 만났다. 장강은 인간의 도리와 세상의 이치를 설명하며 투항해 개과천선(改過遷善)할 것을 호소했다.

장강의 용기와 인품에 깊이 감명받은 장영이 다음과 같이 말했다.“저희가 이런 짓을 해서 목숨을 보전하는 것은 가마솥 안에 들어 있는 물고기(부중지어:釜中之魚)의 신세와 같을 뿐입니다.”

그들은 모두 장강에게 귀순했다. 장강은 잔치를 베풀어 그들을 위로하고 용서했다. 지방관리 장강(張綱)과 도적 괴수의 이야기에 나오는 표현이 ‘여등약시 상취구존명 기여부재중지어 필불구지(汝等若是 相取久存命 其如釜存中之魚 必不久之:너희들은 이처럼 서로 취하여 목숨을 오래 보존할지라도 그것은 솥 안에 있는 물고기와 같아서 결코 오래 가지 못할 것이다)’다.

이에 기인해 부중지어(釜中之魚)라는 표현이 회자됐다고 한다. 우리 사회에 이와 같은 어려움이 오지 않도록 바르게 업무를 처리하자.

<국전서예초대작가·청곡서실 운영·前 대전둔산초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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