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획일성과 다양성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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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획일성과 다양성 사이
  • 충청투데이
  • 승인 2020년 02월 23일 18시 34분
  • 지면게재일 2020년 02월 24일 월요일
  •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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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옥희 청주시 내수읍 주민복지팀장

대한민국 최대의 명절인 설을 보낸 지 한 달이 돼 간다. 어느새 훌쩍 자란 조카들도 서른을 앞두고 결혼을 얘기하는 나이가 됐다. 하지만 이번 설에는 조카들에게 "남자 친구는 있니? 결혼은 언제 할 계획이니? 취업 준비는 잘하고 있니?" 등의 질문은 하지 않았다. 아마 그곳에서의 생활이 나에게 가르침을 주었기 때문일 테다.

미국에서의 생활 1년,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 수 있는 이곳에서의 생활은 나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해줬다. 그 시간은 나를 미로 한가운데의 아이처럼 낯섦의 세계로 이끌었지만 어느새 그곳의 세계를 즐기며 배울 수 있게 해줬다.

한국에서는 늘 같은 틀에 박혀 같은 생각을 하고 살았다. 학창 시절엔 좋은 대학만 바라봤고, 그다음엔 취업을, 취업 후에는 결혼해야 한다는 꼬리표들이 내 틀을 더 견고히 했다. 세상은 마치 그 틀에서 벗어나면 무엇인가 문제가 있는 사람처럼 나를 취급했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철옹성같이 굳건한 틀, 그것은 이미 가슴속 족쇄가 돼 나뿐만이 아닌 많은 젊은이에게 힘겨운 짐이 되고 있다.

그렇다면 내가 1년간 살면서 본 미국인들의 삶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다양한 인종, 피부색, 다채로운 시각이 어우러진 그들의 삶, 나의 지난 삶의 방식과 너무도 다르게 살아가고 있는 그들의 모습은 뿌리 깊은 나의 틀에 금이 가게 하기 충분했다. 다른 사람이 무엇을 하든 전혀 개의치 않는 그들의 ‘쿨’한 모습은 너무 신선한 나머지 그들 삶 속으로 나를 동화시켰다.

엄청나게 큰 체구의 여성이 엉덩이가 다 도드라지는 레깅스를 입고 다녀도 누구 하나 눈길을 주지 않는다. 눈길을 주는 사람은 오직 동양인, 주로 한국인처럼 느껴졌다. 상대방과 가까이 마주칠 때마다 "sorry"라는 말을 사용하며 남에 대한 배려를 생활화하는 그들의 관습은 불과 몇십 년 전, '동방예의지국이었던' 우리나라를 반추하게 했다.

또 나와 다르다고 편견으로 배척하지 않는 문화, 다양성을 존중하는 그들의 문화는 신선하고 멋있었다.

미 해군 법무관으로 재직하고 있는 Andy의 초대로 그 친구 집을 방문했던 적이 있다. 미국은 파티를 자주 즐겨 하는데 일반적으로 초대받은 사람들이 설령 서로서로 모르더라도 주최자인 자신을 기준으로 손님을 초대한다. 그날도 우리 부부뿐만 아니라 Andy와 함께 근무하는 직장동료가 초대돼 그들과 어울려 함께 대화하고 즐겁게 지내고 있었다.

분위기가 한창 무르익을 즈음, 농담으로 내 딸 얘기를 하며 참석한 그의 동료에게(총각이었다) "나의 딸을 만나볼래?"라고 했다. 그런데 Andy가 하는 말이 그 친구는 게이라고 했다. 그러고 나서 난 다시 Andy에게 거짓말하지 말라고 했더니 Andy가 막 웃으며 진짜라고 다시 말해줬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경험한 일이었다.

우리나라는 여전히 성(性) 소수자들이나 사회적 소수자들을 혐오스럽게 인식하고 배척하는 반면 미국은 동성혼 결혼도 인정할 만큼 성(性) 소수자들의 삶이 대중들과 다를 것 없었다. 그들을 바라보고 대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너무도 평범했다. 무엇이 옳고 그르다고 단정하지 않는다. 누구도 인종이 다르다고, 직업이 다르다고, 피부색이 다르다고, 생김새가 다르다고, 또 성적 취향이 다르다고 차별하지 않았다. 그것은 각자의 삶을 존중하는 성숙한 사회의 본보기인 동시에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방향이었다.

그곳에서의 값진 경험은 나에게 새로운 가치관이라는 '변화의 씨앗'을 줬다. 다양한 나무들이 각자의 개성을 뽐내며 자랄 수 있는 다채로운 사회를 꿈꾸며 그 씨앗을 뿌리리라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