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현종 농협 세종교육원 교수

끝도 모를 숫자가 세어진다. 자고 나면 늘어만 가는 확진자 및 사망자의 숫자가 이제는 무감각해지기까지 한다. 신종코로나 바이러스라는 공포가 중국으로부터 이 땅에 전해진 지 벌써 한달이 넘어가고 있다.

중국만 놓고 보면 신종코로나 바이러스 사태가 악화일로에 있고,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이러한 중국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도 불편하다. 그리고 그 불편함이 중국인 전체에 대한 반감으로 이어지는건 아닌지 우려스럽다.

중국에 대한 반중 정서는 사실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사드 보복으로 인해 우리가 받은 경제적 고통을 생각하면 反중국 정서를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중국이 바이러스의 진원지가 된 것이 처음도 아니다. 2002년 사스도 중국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와 관련하여 중국에 대한 정서가 반대를 지나 혐오로 이어지면 이는 경계해야 할 일이다. 그 대상이 중국이어서가 아니다. 혐오가 인류 보편의 감정에 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중국으로부터의 입국자를 전면 금지하는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에 정치권에서는 중국 눈치 보기라며 비판적 입장을 취했다.

지금도 일부에서는 중국인들의 전면적인 입국 금지를 주장하고 있는데, 그 기저에는 우리의 세금으로 외국인들이 건강보험 혜택을 보고 있다라는 불만이 크게 작용한다.

그러나 그러한 주장이 사실이라해도 그것은 제도적인 보완을 통해 풀어나갈 문제이다.

우한 거주 교민을 국내 시설로 이송시키는 과정에서 공무원 시설 인근 주민의 반대로 처음에 어려움을 겪었다. 대다수는 의사결정 과정에 대한 정부 정책을 비판한 것이고, 교민 자체를 반대한 것은 아니지만, 일부는 중국에 거주했던 자가 내 주변에 온다는 사실만으로 두려움을 느낀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그 두려움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을 수 밖에 없는 상식적인 감정이다. 우리 인간에게는 두려움도 있지만, 다행히도 그걸 극복할 수 있는 힘도 있다. 포용정신, 인류애 등이다.

지금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은 그러한 인류애이다.

최근 서울의 한 여대에 합격을 했던 트렌스젠더가 자진하여 합격을 포기한 사실이 보도되었다.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가 그것을 포용하기에는 아직 사회적 합의가 덜 된 듯 하다.

신종코로나 바이러스는 감염과 죽음이라는 현실적인 문제가 있는데 반해, 트렌스젠더는 이러한 위협이 없음에도 사람들은 이를 용인하지 않는다.

해당 대학내에서 일부는 찬성한 사람도 있었겠지만, 함께 하기를 거부한다고 하여 그들이 틀렸다거나 잘못되었다라고 비난할 수는 없다.

퀴어문화축제를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적으로도 그렇고 우리나라만 해도 점차 퀴어 축제를 개최하는 지방자치단체가 늘고 있다.

성소수자도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일원으로 함께 더불어서 살 수 있는 지혜를 논의하면 좋겠다.

<우리가 아산이다>라는 피케팅을 통해 중국 거주 교민을 따뜻하게 맞이 해준 최초의 아산 시민을 기억한다. 그 분이라고 두려움이 없었을까?

그럼에도 인류애라는 보편적인 사랑을 통해 이 사회가 더불어서 살아가야 하는 걸 보여준 그 분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며, 우리 사회가 좀 더 포용적인 사회가 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