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희 충남역사문화연구원장

조선시대 저명한 실학자인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충청도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곳으로 가야산 주변의 10개 고을’을 지목했다. 홍성, 예산, 서산, 당진, 태안, 아산, 보령, 서천 등 8개의 문화권역을 지칭하는 내포가 바로 그곳이다. 이곳은 예당평야와 같은 옥토가 펼쳐져 있을 뿐만 아니라 천수만, 가로림만, 아산만 등의 영향으로 많은 포구가 형성되어 있어 예부터 물산이 풍부했다.

또한 내포지역은 백제시대 이래로 중국과 일본은 물론 동남아, 인도 등과 문물을 주고받던 교류의 장소였다. 특히 이곳에서는 불교, 유교(성리학), 천주교(기독교) 등이 종교와 사상이 수용되었고, 이는 다시 한반도 전역, 나아가 일본으로 전파됐다. 먼저 불교사상사적으로 내포지역은 중국을 통해 선진적인 사상을 받아들여 나말여초 시기에 선종의 중흥을 이끌었을 뿐 아니라 화엄종, 법상종, 천태종 등 다채로운 불교종파의 발전을 낳았다. 유학사상적으로 내포는 고려시대 성리학을 가장 먼저 수용하여 정착된 곳이다. 송나라 멸망 후 서산 간월도에 정착한 정신보, 보령의 백이정을 통해 수용된 성리학은 서천의 이곡·이색 등을 통해 새로운 시대사상으로 발전해 갔고, 조선왕조 개국의 기틀이 되었다. 이러한 유교사상 아래 한말 국난의 위기에서 나라를 지키려는 의병항쟁과 독립운동이 내포지역에서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한편 조선후기 이곳에서는 천주교가 뿌리를 내렸다. 18세기 후반 이양선을 타고 온 서양 신부들의 초창기 포교활동의 주 무대는 내포였다. 한국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과 두 번째 사제인 최양업이 모두 내포 출신이었다는 점이 이를 증명한다.

이러한 고대 이래 내포지역에서 진행된 거대한 역사는 내포지역민의 정신적 기질과 사상을 형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내포의 정신을 한 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다. 다만, 여러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해보면 내포 정신은 진취성, 개방성, 다양성, 민중성으로 축약된다. 즉, 오랜 세월 적극적으로 새로운 문화를 수용하고 전파하는 과정에서 내포 지역민은 자연스럽게 진취적이고 개방적인 태도와 기질을 지니게 되었다. 그리고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문화적 다양성을 이루어 내었다. 진취성, 개방성, 다양성과 같은 내포지역의 정신과 문화적 특성은 바로 세계화된 21세기가 요구하는 시대정신과도 일치한다고 할 수 있다.

충남도는 환황해권의 중심으로 제2의 도약을 꿈을 꾸고 있다. 충남도청의 내포신도시 이전은 환황해권의 중심으로 새롭게 비상하기 위한 충남도의 중장기적 포석이라 할 수 있다. 충남도에서 이러한 포석을 둔 것은 ‘내포’가 고대부터 근대까지 환황해권 문명교류의 중심에 위치해 있었다는 점을 상기해 보면 어쩌면 당연한 귀결인지도 모른다. 최근 중국은 미국과 맞설 정도로 눈부신 경제 발전을 이루고 있고, 동남아국가들도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세계적인 변화에 발맞춰 정부는 ‘환황해권 경제정책’, ‘신남방정책’을 추진하고 있고, 충남도는 서해안권 개발사업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역사적으로 장구한 경험이 있는 서해를 통해 문화를 교류해왔던 내포지역을 주목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그리고 환황해권 시대를 맞아 내포지역의 지정학적 중요성, 경제적 발전 가능성을 논의할 때 그 뿌리를 이루는 내포의 역사, 그리고 이곳에 깃든 내포의 정신과 사상에도 다시 주목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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