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절불요

후한(後漢)말엽(末葉) 상서령(尙書令)으로 있던 교현(橋玄)은 의지가 매우 강하고 청렴해 불의에 굽히는 일이 없었다. 그는 황제와의 친분을 믿고 백성들의 재물을 횡령하는 등 많은 불법을 저지르는 태중대무 개승(盖升)의 죄상을 샅샅이 조사해 상소문을 올렸으나, 황제가 받아들이지 않자 병을 청하고 사직했다.

그 후로 황제는 그에게 태위(太慰: 삼공중의 하나로 국가 대사를 관장하는 최고의 관직) 직을 내렸으나 끝내 응하지 않았다.

어느 날 교현의 열 살 난 아들이 떼강도에게 잡혀간 일이 있었다. 양구(陽球)라는 장수가 이를 알고 즉시 군사를 풀어 강도들의 은신처를 찾아내 물샐틈없이 에워쌌으나, 더 이상 접근하면 강도들이 어린아이를 해칠까봐 공격을 못하고 있었다.

그러자 뒤늦게 현장에 도착한 교현이 화를 내며 소리를 질렀다. “강도는 백성들의 화근인데 어찌 어린아이 하나 때문에 머뭇거리는가?”

그리고는 병사들을 다그쳐서 강도들을 모조리 체포했으나 교현의 아들은 결국 저항하던 강도들의 손에 무참하게 살해당했다.

당시 사람들은 교현의 사심 없는 법 집행과 꺾이지 않는 의지를 높이 찬양했다.

후한 말엽(末葉)의 학자 채옹(蔡邕)도 태위교현비송(太僞橋玄碑頌)이라는 글에 다음과 같이 칭송했다

“유백절불요(有百折不撓)-백 번 꺾일지언정 휘어지지 않았고

임대절이불가탈지풍(臨大節而不可奪之風)-큰 절개에 임해서는 빼앗을 수 없는 기품을 지녔다.”

수없이 많이 꺾여도 굴하지 않고 이겨 나간다는 뜻이며, 백번 꺾여도 어떠한 어려움도 굽히지 않는 강인한 정신력과 끗끗한 자세로 나간다는 말이다. 인생을 허무하게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생(生)은 살만한 가치가 있다. 생(生)은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다. 백절불굴의 정신은 인생의 마지막엔 크게 웃을 수 있게 만든다.

인간은 패배하지 않는다. 인간은 파괴될 수는 있지만 패배하지는 않기에 백절불요하는 청렴하고 의지 높은 기백이 항시 필요하다.

<국전서예초대작가·청곡서실 운영·前 대전둔산초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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