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을석 충북교육청 교육정책연구소장

"우리는 종종 인내심을 잃는다. 나도 마찬가지다. 어제 있었던 일에 대해 용서를 구한다."

새해 첫날 가진 기도회에서 교황이 전날 있었던 실수를 사과하며 한 말이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한 해의 시작을 사과의 말로 열게 된 것일까.

교황은 작년 12월 31일 성 베드로 광장에서 신도들과 새해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여러 사람과 악수한 뒤 몸을 돌려 다른 곳을 향하던 찰나였다. 바로 직전 성호를 긋고 자신의 손을 잡아주기를 기다리던 여신도 한 명이 있었다. 교황이 자신을 보지 않고 그대로 몸을 돌리자 황급히 교황의 손을 낚아챘다.

순간, 교황은 짜증 섞인 낯빛으로 화를 내며 여자의 손등을 다른 손으로 내리치고는 힘을 주어 잡힌 손을 빼냈다. 뉴스가 전하는 교황의 '버럭 사태'를 보며 교황에 대해 평소 가지고 있던 호감이 싹 가셨다. 조금 전까지 온화한 미소로 사람들을 축복하던 교황이 표변하여 불같이 화를 내는 장면이라니….

교황을 옹호하며 여자의 무례를 탓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교황의 축복을 받으려는 종교적 간절함을 그대로 보여주는 신도를 꾸짖고 싶지 않았다.

설령 무례했다 해도 세계 평화와 영혼의 구원을 이끄는 지도자가 보여줄 품격있는 대응은 아니었다.

그런데 하루 만에 교황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공개적으로 사과했다. 나는 또다시 교황에게 호감을 느끼게 됐다.

위대한 사람이라고 해서 잘못을 전혀 범하지 않는 존재는 아닐 것이다. 오히려 잘못을 직시하고 인정하는 용기를 가진 존재, 주저함 없이 사과하고 잘못을 넘어서는 실천을 하는 존재야말로 진정으로 위대한 사람일 것이다.

최근 뉴스에 따르면, 교황은 해당 여성을 직접 만나 사과했다고 한다. 지난 2월 8일 일반 신도를 만나는 수요 행사에서 따로 대면했다는 것이다. 행사가 마무리되기 직전 이뤄진 만남에서 교황은 환한 미소와 함께 해당 여성과 악수하고 짧은 대화를 나눴다. 이 자리에서 작년 연말 있었던 불미스러운 일에 대해 교황이 사과의 말을 건넸다고 한다.

기사와 함께 실린 사진을 보노라니 절로 마음이 훈훈해지고 감동이 밀려온다. 참 좋은 소식이다.

진심 어린 사과는 얼마나 힘든 일인가. 알량한 자존심을 버리는 일은, 부여잡고 있는 위신과 체면을 벗어던지는 일은 또 얼마나 힘든 일인가.

사과 이전에 자신을 성찰하고, 있는 그대로의 사실과 마주하는 일도 쉬운 것은 아니다. 그래서 보아야 할 것을 보지 못하고 보고 싶은 것만 보거나, 있는 것을 없다 하고 없는 것을 있다고 강변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만다. 교황과 관련된 최근 에피소드에서 나름 큰 배움을 얻었다. 성찰, 직시, 실천을 올 한 해의 키워드로 삼고 싶다. 시간을 내어서 고요히 살펴볼 것, 회피하지 않고 실상을 파악할 것, 필요하다면 질책을 받더라도 행동에 옮길 것….

정치인들처럼 공연히 목청만 높이지 않았는지, 논쟁가처럼 잘못해 놓고선 잘했다 우기지는 않았는지, 공연히 부산 떨며 주위를 시끄럽게 하지는 않았는지 벌써 낯이 화끈거린다. 먼저, 내가 아는 나를 살피고 내가 모르는 나를 찾아보겠다. 이 일도 중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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