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공섭 대전동구문화원장

옛 삶의 흔적들이 그대로 녹아 있는 산마을(달동네)이 아직도 우리의 어렵던 시절을 증명이라도 하는 것처럼 존재하고 있다. 고단한 삶의 흔적들이 마중하는 달동네가 새롭게 탄생한 곳, 통영 동피랑 달동네를 답사하며 지역 주민과 환경단체의 사고를 받아들여 관광명소로 단장한 통영시의 관계자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수차례의 재개발 결정을 뒤집고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한 ‘동피랑’은 통영을 찾는 관광객들에게는 필수 코스다. 좁은 골목길이 인파로 북적이는 명소가 됐다. 동피랑의 어원은 동쪽에 있는 비탈지역을 지역 사투리로 피랑이라고 부른 것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동피랑은 통영시 정량동과 태평동 일대의 비탈진 산동네다. 서민들과 저소득층 주민들이 거주하고, 그곳에서 작은 가계를 운영하여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지방의제(地方議題) 추진기구 ‘푸른통영21’이 서민들의 눈물겨운 삶이 녹아 있는 골목길로 그 역사적 소중함을 인지해 현재의 동피랑을 만드는 데 기여했다고 한다. 동피랑은 전국의 벽화마을 중에서도 성공한 사례로 꼽힌다.

대전의 대동 산1번지 달동네의 현재를 생각해 본다. 대전 동구 대동 산1번지는 6·25 전쟁당시 피란민들이 천막을 치고 생활하면서부터 시작됐다. 오랜 세월 가난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던 산동네에 환경미술단체에서 일부 벽화를 그렸다. 산동네 절반 가량이 재개발사업으로 사라지고, 절반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현실이다.

동구청이 달동네를 관광문화메카로 탈바꿈하려 많은 노력을 하고 있어 기대가 크다. 동피랑이 사랑받을 수 있었던 것은 지역 자치단체의 열린 사고와 2년마다 벽화 공모를 통해 새로운 테마로 단장하는 기획력 때문이다. 한 번 구경하면 시들해지는 기존의 관광문화에서 재방문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명소로 발전했다.

자치적 성격의 마을협동조합을 통해 공동매장을 운영, 주민들이 공동체 경제를 만들고 있는 전국 최고의 슬로시티 벽화마을로도 자리 잡았다. 특히 동피랑은 제1회 ‘그 언덕의 재발견’, 제2회 ‘동피랑 블루스’, 제3회 ‘땡큐, 동피랑’ 등 7년에 걸친 벽화운동은 재개발예정지역에서 주거환경개선지역으로의 전환도 이뤘다.

도시계획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꾼 놀라운 성과다. 이것은 지역의 특성과 그 지역의 정체성을 세심하게 살펴 작업한 결과다. 중앙전통시장과 어우러진 어시장(魚市場)이 지리적·시간적으로 동피랑과 연계돼 있는 필연의 코스이기에 더욱 경제적인 관광문화가 될 수 있었다. 중앙어시장 골목길을 지나 동피랑을 오르면 꼬불꼬불 정겨운 골목길 벽마다 특색 있는 벽화가 마중한다.

동피랑 벽화는 골목화랑으로 시각을 즐겁게 한다. 벽화와 잘 어울리는 어린이들의 미소도 새록거리며 방문객을 환영한다. 정서적 평온을 상징하는 파란색의 사랑의 하트가 마중한다. 시사적으로 훈육하는 벽화, 콧방울로 만든 하트, 천사의 날개를 달고 싶어지는 하얀 날개, 저녁노을이 아름다운 바닷가 풍경, 충무공이순신 장군을 기리는 벽화, 각 지역에서 벽화봉사단이 수고한 그림, 텃밭 뚝에 그린 앙증맞은 캐릭터는 가파른 골목길을 오르는 우리들의 거친 호흡을 진정시켜 준다.

골목골목 미로처럼 연결돼 있는 동피랑 언덕길의 색다른 벽화는 세상을 향해 무언의 메시지를 던져준다. 우리도 할 수 있다. 우리도 아름답게 세상을 함께 보듬는다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동피랑의 벽화는 희망, 사랑, 행복, 안정, 협동, 나눔과 비움, 나라사랑이 가득하다. 특히 성웅 이순신 장군의 그림은 젊은이들에게는 훈육적 가치가 있으며, 어린이들에게는 역사를 배우는 학습장으로 활용하면 좋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동피랑 언덕마을 제일 높은 곳에 자리 잡은 동포루(東鋪樓)에서 조망하는 통영포구는 늘 푸른빛으로 눈이 시립도록 희망의 찬가로 손짓하고 있다.

분명 동피랑은 서민의 눈물겨운 애환이 서린 곳이다. 그러나 작고 조금은 불편하고 복잡해도 가슴 부비며 이웃에 담 넘어 작은 사랑의 나눔을 전할 수 있는 곳이라 친밀감이 간다. 골목길 작은 좌판에는 소소한 즐거움이 넘쳐난다. 어깨를 스치고 지나는 사람들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한 이곳은 해피바이러스를 풀풀 날리는 동피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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