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윤석 을지대학교병원 산부인과 교수

20세기 철학자 메를로 퐁티는 ‘나는 느낀다 고로 행동한다’는 유명한 화두를 던졌다. 몸이 없으면 마음도 없으니 당연한 말이다.

하지만 서양 기존 철학은 몸과 정신을 분리하는 이원론적 입장을 취하며 인간의 몸을 극복해야 될 대상으로 삼았고 17세기 데카르트가 그 정점을 찍는다. 그는 세계를 정신과 몸, 주체와 객체, 의식과 물질이라는 이분법에 기초를 둔 관념론으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몸에 대한 시각이 달라진 건 19세기말 ‘나의 몸은 나의 전부다’라고 선언한 니체 이후다. 20세기 후반 퐁티는 데카르트를 정면으로 비판, 공허한 관념이 아닌 온몸으로 세상을 지각해야 된다는 주장을 펼쳤다.

의사들은 환자 진료시 데카르트가 아닌 퐁티를 생각한다. 몸이 아프면 정신은 몸에 굴복된다. 내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쓸데없는 생각을 하게 되고, 희망도 없어진다. 하지만 몸이 회복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원래의 자신으로 돌아간다.

몸이 아팠을 때 의사로부터 이것은 스트레스 때문이며 마음을 편히 가지라는 조언을 들었던 경험이 누구나 있을 것이다. 어떻게 하면 마음이 편해질까? 마음을 편히 먹으면 스트레스가 줄어들까?

가능할 수도 있지만 정답은 아니다. 아픈 몸부터 치료해야 한다. 몸을 움직이고 생각을 줄이며, 영양분을 충분히 섭취하고 운동을 하고 충분한 잠을 청하는 습관을 만들어 내는 것, 이것이 내 몸을 치료 하는 것이다.

몸이 부드러워지면 마음도 부드럽게 바뀌고, 아픈 것도 점차 나아진다. 내가 부드러워지니 세상도 부드럽게 다가와 통찰력까지 생긴다. 마음을 건강하게 만드는 것은 머리가 아니라 몸이라는 철학이 퐁티의 신체성이다. 데카르트 같았으면 마음을 수련하면 건강해진다고 했을 것이다.

21세기에 접어들며 몸과 마음이 분리돼 있지 않다는 사실은 여러 연구를 통해 확인되고 있다. 양자물리학도 결국 인간의 몸과 정신도 서로 연결돼 있다고 본다. 인간의 몸은 욕구에 봉사하는 도구가 아니라 세계와 소통하는 주체라는 것이 21세기 철학 주류다. 따라서 머리로 생각하는 것보다 신체로 느끼는 것에서 더 큰 가치는 만들어 진다.

사람의 본심, 됨됨이는 머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의 태도(attitude)를 보면 알 수 있다. 그 사람의 센스는 옷차림에서 나오며 생활 습관은 체형을 통해 확인 할 수 있다. 우리 몸을 낱낱이 살펴봐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이는 세계라는 의미가 인간의 머리가 아닌 몸에 축적된 체험에서 발생한다는 퐁티의 생각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오늘도 잡다한 생각을 떨쳐버리고 퇴근을 한다. 가벼운 운동으로 내 몸을 돌보고 숙면을 취한다. 내일 멋진 슈트를 한 번 입고 출근해 보자. 인간의 최대 장점은 신체성에 있다는 퐁티를 외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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