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철 세종시교육청 교육정책연구소장

교육권은 교육을 논할 때 종종 등장하는 용어이다. 교육권은 법률상의 용어로 해석하기도 하지만 학문상 개념이기도 하여 내용이 일정하지 않다. 넓은 의미에서 교육권은 헌법상 인정되는 ‘교육에 관한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말한다. 학생의 학습권이든 학부모와 교사의 교육권이든 국가의 교육권이든 교육권은 국민의 기본권이다.

우리나라는 초중등교육법에 따라 국가가 교육과정의 기준과 내용을 정하도록 하고 있다. 학생들이 무엇을 배울 것인지에 관해 학생·학부모의 개별적 판단과 선택에 맡기지 않고 국가가 개입하고 있는 것이다. 참고로 외국의 경우 국가 교육과정이 없는 나라도 있으며, 있더라도 기본적인 사항만을 제시하는 나라들이 많다. 이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국가가 교육과정을 매우 상세하게 규정하고 있는 흔치 않은 사례에 해당한다. 국가가 정해놓은 교육과정은 모든 초·중등학생에게 예외없이 적용된다. 국가가 학생의 학습권을 보장하기 위해 매우 적극적으로 교육권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국가마다 교육과정을 상세하게 규정하든 대강 규정하든 공통적인 것은 학생을 성적순으로 서열화하도록 하는 규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도 안 되지만 논리적으로 그럴 수도 없다. 국가가 어떻게 국민의 기본권인 교육권을 보장한다면서 자국의 아동·청소년을 성적순으로 줄세우기를 할 수 있겠는가.

각 나라 교육과정의 상세한 정도가 어떠하든 국가 교육과정에서는 예컨대 ‘반드시 배워야 할 것’ 내지 ‘최소한 이 수준 이상을 배울 것’을 담고 있다. 우리나라 교육과정도 마찬가지다. 국가 교육과정 어디에도 학생들의 학습 결과를 상대평가하도록 하고 있지 않다.

그렇다면 중고등학교에서 행해지고 있는 ‘9등급으로 나눠 줄세우는 상대평가제’의 근거는 무엇인가. 이는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이 정해놓은 이른바 ‘학업성적관리 지침’에 따른 것이다. 학업성적관리 지침은 엄밀하게 본다면 국가 교육과정의 ‘정신’을 거스르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일은 왜 용인되고 있는가. 알다시피 ‘입시 경쟁’에 따른 불가피한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상급학교 진학의 과정이 경쟁적이다 보니 ‘가장 객관적으로 가장 공정하게’ 입시를 관리하기 위한 방법을 찾아낸 게 ‘등급제 상대평가’가 된 것이다. 물론 이 방법외에 방법이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문제는 국가 교육과정과 학업성적관리 지침 간의 이러한 불일치가 초래하는 비교육적이고 때때로 반교육적인 ‘교육 관행’이다.

다시 교육권의 문제로 돌아가 본다. 국가가 초·중등 교육과정의 기준과 내용을 정한 것은 국가가 모든 학생의 학습권을 보장하기 위함이다. 국가의 교육권은 공적인 판단 기준에 따라 공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으로 교육의 공공성을 실현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교육의 공공성을 표현하는 가장 자연스럽고 쉬운 표현이 있다. ‘한 아이도 포기하지 않는 교육’이 그것이다. 경쟁교육을 문제삼는 이유는 다름아니라 상당수 학생들에게 열패감과 소외감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최근 세종시교육청을 비롯한 시·도교육청이 추진하고 있는 학교혁신 정책은 ‘학교 교육이 교육 본래의 모습을 찾아가고자 하는 노력’에 다름아니다. 학교와 학부모가 공유해야할 점은 '학교는 학생을 성적순으로 줄세우기 하는 곳이 아니라 한 아이도 포기하지 않는 교육을 하는 곳'이라는 생각이다. 학교가 학생을 성적순으로 줄세우기 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면 ‘교육의 공공성’은 훼손된다. 공공성은 모두를 위함이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