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식 맥키스컴퍼니 사장

지난해 말 수도권 인구가 대한민국 전체의 절반을 넘었다. 예고됐던 일이지만 충격이 이만저만 아니다. 수도권 집중을 완화하기 위해 세종시와 전국 10곳에 혁신도시가 건설 중이다 보니 지방에서 받아들이는 심각성은 상상을 초월한다. 국토의 10분의 1 수준인 수도권에 인구의 절반 이상이 사는 세계 어디에서도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일이 현실이 됐다. 수십 년간 수도권 일극체제를 타파하자고 말로만 떠들었지 오히려 수도권 팽창만 부추긴 결과다.

수도권과 지방의 인구 역전현상은 단순한 인구통계상의 변화가 아니다. 정경사문(政經社文)의 집중으로 인한 폐해가 보다 본질적인 문제다. 국가핵심기능과 부의 80% 이상이 수도권에 집중되면서 한국사회는 이미 기회균등을 말할 수 없다. 서울이어야만 누릴 수 있는 혜택과 기능이 너무 많은 나라가 돼버린 지 오래이다. 인구 역전현상은 이런 사회적 구조가 젊은 세대의 탈(脫)지방을 부추겨온 결과물인 것이다.

통계청 ‘지역소득’ 자료에 따르면 갈수록 수도권과 지방의 빈부격차가 벌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지역내총생산(GRDP)의 수도권 비중은 2018년 51.8%까지 확대됐다. GRDP는 각 시·도의 종합경제지표다. 우리나라 실질 성장률의 수도권 의존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예금액, 연구개발비, 재산세 징수액도 3분의 2가 수도권에 편중돼 있다. 생산기술이 표준화되다시피 한 제조업은 지방에 몰린 반면, 젊은 세대의 구직 수요가 큰 지식기반서비스산업이나 문화콘텐츠산업은 수도권 쏠림현상이 가속화됐다. 정보를 다루는 주요 방송, 신문사의 본사는 서울에 몰려 있고, 교육은 '인 서울'이냐 아니냐를 놓고 경쟁하는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고 있다. 국가중추기능과 핵심 가치창출이 서울에서만 이뤄지다 보니 사람으로 치면 동맥경화상태나 다름없다.

우리 사회가 두 동강이 날 정도로 갈등이 비등한 것도 수도권 중심의 가치로 온 나라가 획일화됐기 때문이다. 전 국민이 지역보다는 서울을 바라보고 지향하는 세상이다. 지역성 상실시대다. 단언컨대 수도권 집중의 폐해를 이야기할 때 이보다 무서운 말은 없다. 지역성이란 개인과 마을, 도시, 더 크게는 국가와 세계 전체에 해당하는 개념이다. 사람이 특정한 공간에 존재하면서 자연스럽게 쌓아온 공통의 자산이자 지속적으로 지켜가야 할 소중한 가치다. 지역성 상실은 다양성의 소멸이며, 그런 점에서 민주주의의 가장 큰 적이다. 인터넷과 네트워크의 발달, 모바일 미디어의 보편적 이용으로 세계가 좁아졌다지만, 같은 장소와 풍토에서 함께 부대끼고 공감하며 사는 인간 존재의 본질까지 망각해선 안 된다.

서울이 대한민국을 규정할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대한민국의 본성은 다양한 지역성이 모이고 자연스럽게 섞일 때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다. 국가가 "당장 고향을 떠나라"고 젊은이들을 부추기고 국민 모두를 보편적 서울사람으로 만들어가는 이 시대에 종말을 고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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